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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황산공원의 숲길을 걷다 보면 바람에 흩날리는 '이이효재'가 들린다.
- 이이효재 -
부모의 성을 함께 쓴 이 독특한 이름에는 한 시대를 바꾼 여성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1924년 마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해방 직후 이화여대에 입학했고, 1947년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회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창설하고, 1981년 대학원 여성학과 개설에 힘을 보탰다. 그녀의 학문은 책상 위가 아니라 거리와 삶 속에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해직의 아픔 속에서도 이이효재는 멈추지 않았다. 여성평우회, 여성한국사연구회, 여성민우회를 이끌며 분단과 민주화, 평화의 문제를 여성의 시선으로 엮어냈다.
그녀는 자주 말했다. “여성운동은 사회변혁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해방의 길이어야 한다.” 그 신념은 국제사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제기했고, 1992년 UN 인권소위원회에서 ‘성폭력 전쟁범죄’로 공인받게 한 것도 그녀의 평생의 용기였다.
그런 이이효재가 마지막에 선택한 무대는 고향 진해였다. 은퇴 후 제황산 아래 경신사회복지연구소를 세워 지역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연구와 자문을 이어갔고, 진해기적의도서관을 만들어 시민과 아이들이 함께 배우고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길 위에 지금은 ‘이이효재길’이 있다. 생명과 평등, 평화와 이음을 담은 네 개의 숲길. 이 길은 한 여성이 남긴 철학의 흔적이자, 이웃이 함께 걷는 공동체의 길이다.
지난 10월 11일, 이곳에서는 ‘제4회, 이이효재길 마을축제’가 열렸다. 노래극과 색소폰 합주, 통기타 공연, 그리고 아이들의 그림과 손끝에서 피어나는 체험 여러 개의 부스로 공원은 하루 동안 따뜻한 평등의 공간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그린 생태환경 그림, 손으로 만든 배지와 나무 장식, 한 장 한 장의 권리 엽서에는 이이효재가 꿈꾸던 “평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그 길 위에서 시민들은 단지 축제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효재가 남긴 삶의 철학을 되새기며 걸었다.
“사람을 잇는 운동, 생활 속의 평등.” 제황산의 바람결에 다시 흩날리고 있었다.
이덕자 행복중심 진해생협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이효재 선생의 정신은 제도나 구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피어났다. 이번 축제는 그분의 사상을 시민의 일상으로 되살리는 자리이다.”
이번 행사는 진해기적의도서관, 진해YWCA, 진해여성의전화, 유한회사 에코힐링, 행복중심 진해생협, 진해 장애인 인권센터, 진해 지역 자활센터, 진해성폭력상담소 등 8개 단체가 공동 주관했다.
아쉬움도 남았다. 매년 이어지는 지역 체육대회나 관변단체 행사에는 단골로 등장하여 축사, 격려사를 남발하는 지역 정치인들이 이번만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해구청장과 동장, 국회의원은 물론 경남도의원도 보이지 않았고, 민주당 김상현·이종화 시의원, 국민의힘 김헌일 시의원,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 조광호 사무국장과 곽은정 교육연수 위원장이 함께했지만, 제도권의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했다. 시민사회가 함께 지켜온 인물과 가치에 대해, 행정과 정치권이 좀 더 깊은 존중과 지원을 보여야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기는 것이다. 지역은 화려한 행사가 아니라 기억할 만한 인물을 통해 성장한다. 비록 축제는 작았지만, 이이효재의 이름은 여전히 진해의 바람 속에 살아 있다.
그녀가 남긴 말처럼, “함께 사는 세상”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걷는 길 위에 있다. 진해의 가을 하늘 아래,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한 이름을 불렀다.
이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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