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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진해’ 웃기지 마라…시민의 삶은 진해에만 있지 않다

기사입력 2026.09.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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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호가 있다.

    “오직 진해.”

    지방선거를 해도 오직 진해, 국회의원 선거를 해도 오직 진해다.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누구보다 진해를 사랑하고, 진해를 위해 일할 사람이라며 ‘오직 진해’를 외친다.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지역을 대표하겠다는 정치인이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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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정말 ‘오직 진해’에서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삶은 이미 진해의 경계를 넘어섰다 조선시대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반경 40리 안에서 먹고살던 시대라면 ‘오직 우리 고장’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성립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진해에서 살면서 창원으로 출근하고, 부산에 가서 병원을 다니고, 서울에서 일을 보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 때로는 수백㎞를 이동한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진해에서 태어났다고 평생 진해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가고, 직장을 따라 서울이나 부산으로 떠나기도 한다. 결혼해 전혀 다른 지역에서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부모와 형제, 자녀와 친구가 전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시대다. 우리의 실제 삶은 이미 진해라는 행정구역을 훨씬 넘어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거철만 되면 세상의 경계가 다시 진해구에서 끝난다. 오직 진해.

    나는 이 말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는지부터 묻고 싶다. 진해를 사랑하는 것과 진해만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나도 진해가 잘되기를 바란다.

    좋은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바란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문화시설과 복지시설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진해를 사랑하는 것과 진해만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창원의 정책은 창원에 무엇이 떨어지는지만 따지고, 부산의 정책은 부산에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만 따지고, 진해에서는 모든 국가정책을 진해의 손익으로만 계산한다면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는 누가 생각할 것인가.

     

    지역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의 이익이 언제나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지역사랑이 아니라 지역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오히려 사상적으로는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개인의 삶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사고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국가보다 개인의 삶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지,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라는 제도와 시스템을 완전히 부정하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치안과 복지, 교육과 의료, 사회보장과 법질서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부분이 국가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으로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내가 인정하는 국가는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다.

     

    그게 내가 국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대한민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직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도 아니다.

    국가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오직 진해’와 ‘오직 대한민국’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기꺼이 대한민국을 선택하겠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진해보다 신성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훨씬 현실적이다.

     

    내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진해라는 행정구역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다른 지역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친구와 친척도 전국 곳곳에서 살아간다. 나 자신도 언제까지나 진해 안에서만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진해의 경계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진해만이 아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직장과 소득, 집값과 주거, 교육, 의료, 연금, 세금, 복지, 물가, 금융, 노동과 안전 같은 것들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진해라는 지역의 정책보다 국가의 법과 제도, 경제와 사회시스템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 자녀가 서울에서 취업해도 잘살 수 있어야 하고, 부산에서 장사를 해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진해를 떠나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가 바라봐야 할 범위 역시 행정구역의 경계보다 넓어야 하지 않을까.

    사관학교 논란에서도 다시 등장한 ‘오직 진해’ 최근 거론되는 사관학교 통합 문제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본다. 해군사관학교가 이전하기라도 하면 진해가 당장 무너질 것처럼 이야기하고, 지역상권이 폭망할 것처럼 주장하며 또다시 ‘오직 진해’를 내세운다. 나는 이 문제 역시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사관학교 통합이 논의된다면 먼저 따져야 할 것은 대한민국 국방과 미래 군 인재 양성에 어떤 방식이 더 좋은가다.

     

    통합교육이 실제로 필요한가.

    육·해·공군의 전문성과 전통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합동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통합으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부터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라면 추진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 잘못된 정책이라면 반대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국가적으로’라는 표현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체면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결국 기준은 그 정책이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여야 한다.

     

    나는 국가보다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관학교 통합 역시 ‘국가가 하니까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진해에 손해니까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도 안 된다. 정책이 개인과 국민 전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에 있다고 진해의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서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에 있다고 해서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의 것인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다.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대한민국 해군 장교를 양성하는 국가기관이다. 물론 해군사관학교가 이전하거나 국가정책이 바뀌면서 진해에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문제는 반드시 따져야 한다.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피해 규모를 분석하고 국가에 대책과 보완책을 요구하면 된다. 그것이 지역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분석도 없이 해사가 움직이면 진해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지역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반대하려면 국가적으로 왜 잘못된 정책인지를 가지고 반대해야 한다.

    지역상권이 마치 붕괴할 것처럼 부풀리고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워 정치적 동력을 만드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역을 위한다는 말이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지역을 사랑한다고 경쟁한다. 누가 더 진해 사람인지 이야기하고, 누가 더 진해를 사랑하는지 경쟁한다. 그러면서 또 ‘오직 진해’를 외친다.

    하지만 나는 지역을 사랑하는 정도를 구호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진해를 열 번 외치는 것보다 진해 시민의 삶을 실제로 하나 개선하는 것이 낫다.

    교통이 불편하면 교통을 개선하고, 일자리가 부족하면 기업을 유치하고, 교육환경이 부족하면 교육에 투자하고, 도시가 낙후됐다면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을 가져오면 된다.

    그게 지역정치다.

     

    ‘오직 진해’라는 네 글자를 현수막에 크게 쓰는 것으로 지역을 위한 정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을 사랑하는 정치와 지역만 보는 정치는 다르다 나는 진해가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진해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자녀가 다른 지역에 살아도 잘살아야 한다. 내 친구가 부산에 살아도, 서울에 살아도 잘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진해를 떠나더라도 어디에서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진해 시민이면서 창원 시민이고, 경남도민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보다 먼저 한 사람의 개인이다.

    나는 바로 그 개인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해가 잘되기를 바라면서 부산도 잘되기를 바랄 수 있다. 경남의 발전을 바라면서 대한민국 전체에 더 좋은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게 왜 모순인가. ‘오직 진해’? 이제 그만하자

    그래서 나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오직 진해’라는 구호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해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진해라는 좁은 행정구역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역을 사랑하는 정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만 바라보는 정치는 위험하다.

     

    사관학교 통합이 잘못됐다면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지고 반대하자. 진해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국가에 대책을 요구하자. 그러나 지역의 위기를 과장하고 불안감을 키운 뒤 그 위에서 다시 ‘오직 진해’를 외치는 정치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오직 진해? 웃기지 마라.

    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다. 국가보다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개인의 삶이 진해라는 경계 안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해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다. 진해도 잘살고, 우리 자녀들이 어디에서 살아가든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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