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도 처음부터 수군 장수가 아니었다…‘이순신의 후예’라면 통합교육은 왜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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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및사설

이순신 장군도 처음부터 수군 장수가 아니었다…‘이순신의 후예’라면 통합교육은 왜 안 되나

대한민국 해군과 해군사관학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다. 

우리 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의 충성과 책임감, 군인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특히 해군의 도시 진해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순신 장군은 처음부터 수군 장수로 길러진 사람이었을까. 

오늘날처럼 해군 장교를 별도로 선발하고, 

해군만의 사관학교에서 4년간 교육한 뒤 해군 장교로 임관하는 과정을 거쳤을까  

당연히 아니다. 시대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실제 군 경력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육군·해군·공군별 장교 양성체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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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은 ‘해군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1576년 선조 9년 무과에 급제했다. 

오늘날로 치면 군 장교가 되기 위한 국가의 선발 과정을 통과한 셈이지만,

조선시대의 무과를 현재의 육군사관학교나 해군사관학교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당시에는 현대처럼 육군 장교와 해군 장교를 각각의 사관학교에서 처음부터 따로 양성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이순신 역시 ‘수군 장교 후보생’으로 선발된 사람이 아니었다.

무과를 통해 무관이 됐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군사 보직을 맡으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그의 첫 근무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 첫 임무는 함경도 북방 국경을 지키는 일이었다

이순신이 무과 급제 후 처음 맡은 관직은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이었다. 

여진 세력과 맞닿은 북방지역에서 국경을 방어하는 임무였다.

오늘날의 육군·해군이라는 개념을 조선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함선을 지휘하며 바다에서 시작한 군 경력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 이순신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등을 거쳤고 

1580년에는 전라도 발포 수군만호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수군 지휘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그의 경력이 이후 수군에만 머문 것도 아니었다. 

다시 함경도 조산보 만호 등을 맡아 북방 방어 현장으로 돌아갔고,

녹둔도에서도 여진족의 침입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됐다. 

임진왜란 발발 불과 1년 전이었다.

즉 이순신의 군 경력을 한 줄로 단순화하면 해군 전문교육 → 해군 장교 → 수군 지휘관의 경로가 아니었다.

무과 급제 → 북방 방어 → 여러 무관 보직 → 수군 지휘 경험 → 다시 육상 국경 방어 → 전라좌수사라는 훨씬 다양한 경로를 거쳤다.

 

■ 그렇다고 이순신을 ‘통합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여기서 사실관계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순신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통합군 교육’을 받았다고 표현하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현대적인 육군·해군·공군이라는 군종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

금과 같은 사관학교 교육제도도 없었다.

따라서 조선의 무과를 오늘날의 ‘통합사관학교’와 같은 제도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이순신을 오늘날의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와 같은 경력으로 이해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그는 특정 군종의 학교에서 처음부터 전문 장교로 양성된 인물이 아니라 

조선의 무관 선발제도를 거쳐 여러 군사 현장을 경험한 뒤 최고의 수군 지휘관으로 성장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 그런데 왜 ‘이순신의 후예’는 해군에서 강조될까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임진왜란에서 수많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이 이순신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상징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럽다.

해군과 해군사관학교에서 말하는 ‘충무공의 후예’ 역시 

이순신과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직접적인 조직적 계보가 이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책임감, 지휘철학을 계승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순신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

 단순히 해군이라는 같은 영역에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순신처럼 자신이 처음 맡았던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가가 요구하는 전장을 이해하고 새로운 임무에 적응할 수 있는 지휘관이 되는 것을 의미할까.

 

■ 현대전은 이미 육·해·공군 하나만으로 싸우기 어렵다

오늘날 전쟁 환경은 이순신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육군은 지상에서, 해군은 바다에서, 공군은 하늘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단순한 구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상륙작전을 생각해보자. 해군 함정만으로 수행할 수 없다. 

해군이 병력과 장비를 이동시키고 해병대와 지상군이 투입되며 공군의 항공지원과 정보·정찰자산이 결합된다.

여기에 위성, 드론, 사이버전, 전자전, 미사일방어 등 새로운 영역까지 연결된다. 

한 명의 고위 지휘관이 자기 군종만 알아서는 전체 작전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그래서 현대 군사작전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합동성’이다. 

육군은 육군만, 해군은 해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군종의 능력을 결합해 하나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장교 교육으로 이어진다.

 

■ 사관학교는 왜 처음부터 육·해·공으로 나뉘어 있어야 하나

현재 대한민국에는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가 각각 존재한다. 

각 학교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군종별로 요구되는 전문성 역시 분명히 다르다.

해군 장교가 함정을 지휘하려면 항해와 함정운용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공군 장교에게는 항공작전과 항공우주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육군 역시 지상작전과 부대 지휘에 필요한 별도의 전문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순히 “학교 세 곳을 하나로 합치면 된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질문은 가능하다.

장교가 되는 첫 단계부터 모든 교육과 생활을 완전히 분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가관과 군인정신, 전쟁사, 리더십, 군사전략, 합동작전의 기본과 같은 공통교육은 함께 받고 

일정 단계부터 육·해·공군의 전문교육으로 나누는 방식은 불가능한가.

또는 기존 사관학교를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생도들이 

함께 교육받고 생활하도록 하는 통합교육을 지금보다 대폭 확대할 수도 있다.

통합교육과 사관학교 통폐합은 같은 말이 아니다.

 

■ 통합교육을 한다고 군종의 전문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통합교육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각 군의 전문성과 전통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충분히 검토해야 할 문제다.

바다에서 함정을 지휘하는 해군 장교와 지상부대를 지휘하는 육군 장교에게 필요한 전문능력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통합교육의 목적을 모든 장교를 똑같이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공통적으로 필요한 군사적 기본소양은 함께 배우면서 

군종별 전문성은 더욱 깊게 교육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의사가 의과대학에서 공통적인 의학을 공부한 뒤 전문과목으로 나뉘듯 

군 장교 교육에서도 공통영역과 전문영역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학교를 합칠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미래 전쟁을 지휘할 장교에게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이다.

 

■ ‘이순신의 후예’라면 출신보다 능력을 먼저 물어야 한다

다시 이순신으로 돌아가 보자. 

이순신을 위대한 장군으로 만든 것은 특정 학교의 졸업장이 아니었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뒤 북방 국경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고 여러 무관직을 경험했다.

수군만호를 지냈다가 다시 북방으로 갔고 결국 전라좌수사가 되어 조선 수군을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경력이 수군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임무를 거부하지 않았다.

전쟁이 벌어지자 자신에게 주어진 전력과 지형, 조류, 함선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오늘날 이순신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직책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휘관으로 성장했고

 위기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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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의 후예’라는 이름은 특정 학교의 전유물일까

해군과 해군사관학교가 ‘충무공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그 표현을 특정 학교 출신만의 정체성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순신은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되기 수백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고 현대 해군사관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다.

그가 남긴 충성과 책임, 희생과 지휘의 가치는 해군만의 자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육군 장교도 이순신에게 배울 수 있고 공군 장교도 배울 수 있다. 

부사관과 병사 역시 마찬가지다.

더 넓게 보면 군인이 아닌 국민에게도 이순신의 책임감과 공직관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의 후예’라는 표현은 출신학교보다 어떤 군인이 될 것인가에 관한 약속에 가까워야 한다.

 

■ 이순신을 이야기한다면 ‘합동형 지휘관’을 어떻게 키울지도 물어야 한다

이순신의 경력이 현대 사관학교 통합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시대와 군사제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처음부터 수군이라는 한 영역에서만 성장한 장수가 아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장교 교육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래의 장군과 제독은 자신의 군종만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육군 지휘관도 해군과 공군의 전력을 이해해야 하고, 

해군 지휘관도 지상작전과 항공작전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육군사관생도와 해군사관생도, 공군사관생도가 장교가 되기 전부터 

얼마나 함께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각 군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공통교육과 합동교육을 확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 장교 양성체제 자체를 재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어느 방식이 최선인지는 별도의 검증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만큼은 남는다.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계승하고 있는가, 

아니면 군종의 경계를 넘어 국가 전체의 전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지휘관의 정신까지 계승하려 하고 있는가.

 

이순신 장군은 처음부터 수군 장수가 아니었다.

북방 국경을 지키던 무관은 훗날 조선 수군을 지휘하는 장수가 됐다.

그렇다면 4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순신의 후예를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군이 고민해야 할 것은 출신학교의 울타리를 더욱 높이는 것인지, 

아니면 육·해·공군을 이해하고 함께 지휘할 수 있는 장교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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