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29년간 투병해온 끝이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좌동영 우형우"라 불리며 상도동계를 조직적으로 이끈 6선 정치인의 삶이 이렇게 마무리됐다.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난 최 전 장관은 부산공업고등학교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 대표로 시위에 참여하면서 정치 인생이 시작됐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고향 울산·울주에 출마해 처음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9·10·13·14·15대까지 통산 6선을 지냈다.
최 전 장관은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릴 만큼 YS의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1981년 김영삼이 조직한 민주산악회에 참여했고, 조직을 담당하며 상도동계의 핵심 축을 맡았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합류한 뒤 정무제1장관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 출범 후에는 민자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최 전 장관의 정치 역정에는 시련도 많았다. 1968년에는 이기택 전 총재와 함께 '4·19 6·3범청년회'를 결성해 3선 개헌 저지 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의원직을 강제로 잃었고, 국군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이후에도 정치활동을 멈추지 않아 198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아 야권 민주화운동의 실무를 조율했다. 신민당 부총재, 민주당 수석부총재, 원내총무 등 야당의 주요 당직을 두루 거치며 재야와 제도권 정치를 잇는 역할을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최 전 장관은 여권의 유력 주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선거를 눈앞에 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정치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후 29년간 공개 활동 없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별세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인의 마지막 퇴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전 장관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문까지 감내하며 야권 조직을 지킨 공로는 분명하다. 동시에 그는 3당 합당이라는, 당시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결정에 동참한 인물이기도 하다. 민주화 투사와 여권 핵심 인사라는 두 경력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는 점이 그의 정치 인생을 평가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월 27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으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 4·19혁명공로자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장 명의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일씨와 아들 최석균·최제완씨, 딸 최은지·최은실씨 등 2남 2녀가 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 안팎에서 조문과 애도의 뜻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는 특정 정치인이나 단체의 구체적인 조사(弔辭) 문구까지 원문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장례가 대한민국헌정회장·4·19혁명공로자회장·민주화추진협의회장 명의의 사회장 형식으로 치러지는 점에서, 고인이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 원로로 예우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특정 인사의 발언을 임의로 인용하는 대신,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조문 절차와 장례 형식을 중심으로 전한다.
최 전 장관은 1997년 뇌졸중 이후 29년간 공개 활동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다. 그만큼 이번 별세 소식은 오랫동안 잊혀 있던 한 시대의 이름을 다시 불러낸 계기가 됐다. 특히 그가 몸담았던 상도동계와 3당 합당의 역사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정계 개편이나 합당 논의가 거론될 때마다 과거 사례로 자주 소환되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Q1. 최형우 전 장관은 왜 "우형우"로 불렸나?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상도동계 조직을 이끈 두 축을 가리켜 "좌동영 우형우"라는 표현이 쓰였다.
최 전 장관은 조직, 김동영 전 장관은 자금을 주로 담당했다는 의미로 통용됐다.
Q2. 내무부 장관은 언제, 어떤 정부에서 지냈나?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민자당 사무총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시기에는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Q3. 왜 1997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나?
대선을 앞두고 여권 유력 주자로 거론됐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정치 활동이 중단됐다. 이후 공개 활동 없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Q4. 조문은 어떻게 할 수 있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며, 발인은 10월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구체적인 조문 절차는 장례식장에 문의하면 확인할 수 있다.
최형우 전 장관의 별세는 단순한 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라, 군사정권과 민주화를 거쳐 온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장이 닫히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