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 벚꽃은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마음 한 구석에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막상 벚꽃길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벚꽃을 설령 일제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이용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누리면 안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벚꽃을 평화의 상징으로 삼았으면 좋을려만, 일본은 이 꽃을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자연까지 악용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제국주의 본능을 발동한 것입니다.
일제는 벚꽃을 영토확장의 상징으로 삼았고, 전쟁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은 식민지에 벚꽃을 심었는 데, 그 이유는 일본제국령이라는 신호로 사용하기 위함이고,
"천황을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라고 하면서 젊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은 벚꽃을, 침략, 죽음, 전쟁의 상징으로 삼았으니,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서로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라는 취지로 만든 조물주께서는 얼마나 한탄하였을까요?
참 벚꽃의 운명도 그동안 주인을 잘못 만나 악의 상징으로 되었으니 참 안타까운 세월만 보낸 것 같습니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상징인 벚꽃나무를 진해에 도시미화의 명목으로 대량 심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분들은 진해의 벚꽃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복이 된 후 진해주민들은 이 거리의 나무들을 거의 모조리 베어 땔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제의 잔재에 대한 거부감도 있어서 베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할 필요 없이 길거리에 땔감이 있었으니 벚나무가 남아 있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후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한일간에 국교가 맺어지고,
국교 수교의 기념으로 후지쯔, 도쿄항공 등의 외국회사와 재일교포들이 기증한 벚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당시에 진해에는 6만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졌고, 서울 강변북로와 여의도 일대에 심어졌습니다.
일본군 출신 박정희와 일본회사들의 합작으로 심어진 벚나무, 다소 불순한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벚나무는 일본에서만 자라는 식물도 아니고, 한국의 제주도, 중국은 물론, 아열대 지역에 폭넓게 자라는 식물입니다. 이러한 식물이 그동안 일제의 의해 악용되었지만, 이제 우리가 평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이렇듯 벚꽃은 일본의 꽃도 아니고, 전세게적으로 기후조건만 허락되면 피어나는 꽃입니다.
즉, 전 세계의 꽃임에도 마치 일본이 이를 독점하듯 악용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진해지역에서도 종종 나타나곤 합니다.
오래전에 경화역 발전방안 토론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왜 경화동 사람도 아닌 여좌동 사람이 사회를 보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또한 극히 일부지만 경화동 일부 주민은 자신들이 경화역 주도권을 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경화동은 진해지역 전역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동네였고, 그 사람들이 일제의 강제노역에 동원돼 경화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진해에 살기도 하겠지만 2/3이상이 타지에 살고 있습니다.
굳이 따진다면 이들에게 경화역의 소유권이 더 많을 것입니다.
단지 경화역 부근에 산다고 해서 마치 경화역이 자신들의 것인양 행동한다면,
일본이 전세계적으로 피는 벚꽃을 자신들의 꽃인양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경화역은 진해 전체 주민, 아니 창원시민, 더 나아가면 국민들의 것이고,
단지 그 주변 주민들은 위 선조들의 노고에 혜택을 받는 것이기에 더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모습은 경화동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산다고 해서 그 지역이 자신들만의 것이라는 사고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경화역은 진해선 철도건설로 인해 생긴 역이며, 진해선은 일제강점기 해군기지와의 연결을 위해 설치된 마산선의 지선으로, 진창선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경화역은 1926년 진해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고, 1987년에는 을종 대매소(수익성 문제로 역무원이 발권한 것이 아닌 주민들이 승차권 발매)로 격하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기존 경화역을 철거하였고, 2006년에는 을종대매소도 철수하여 역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9년부터 군항제 기간에만 열차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화려한 명소가 되었지만, 일제시대 때 진해선 및 경화역을 만들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강제노역을 당하면서 일궈낸 소중한 곳이 바로 경화역인 것입니다. 그러나 경화역을 볼 때 우리 선조들의 노고들은 잘 비춰지지 않습니다. 항상 화려한 면만 부각되곤 하는 데, 앞으로는 이름없이 노역으로 희생하신 선조들의 모습들을 상기시킬 수 있는 것도 화려함을 나타내는 것만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경화역은 진해 전 도시공간의 중심에 위치하였으며,
주거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양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길이 700여 미터의 숲속 비스타 공원 형태입니다.
(vista: 통경선이라고도 하며, 원경이 바라다보이는 축선이 강한 전망을 일컬으며,
경화역은 도심속에 있지만 도심과 구분되는 공간적 특징 때문에 가능)
또한 경화동 북부 둥서지역을 연결하는 그린웨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화동, 경화역, 경화시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성, 상징성, 오래된 벚나무를 활용하여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춘 도심공원으로 변모시켜야해할 것입니다.
경화역 뿐만 아니라 역사성, 상징성을 갖춘 곳은 진해에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특히 동부권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성을 갖춘 장소가 많습니다. 이러한 곳에 선조들의 피땀으로 일궈진 곳을 드러내고, 경화역처럼 비스타 그린웨이 형태로 공원화를 추진해 보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