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 전당대회 때 나는 박찬대를 찍었다. 8월 15일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정청래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연설을 듣고 정청래에서 박찬대로 바꾸었다.
왜 그랬을까?
어차피 당시 판세를 보니 정청래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해 박찬대를 찍은 것도 있었고, 왠지 정청래가 불안해서 바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전당대회에 가기 전 지인들에게는 정청래를 찍으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정작 내가 후보를 바꿨으니,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는 처음부터 김민석을 선택했다.
김민석 후보를 과거부터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노무현을 배신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윤석열 정권 당시 남들이 계엄은 어림없다고 할 때도 끝까지 계엄 가능성을 경고했던 모습은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과거의 '배신자' 프레임 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 상쇄됐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정청래 지도부에 대한 실망이었다.
1인 1표와 합당을 강조했지만 나머지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당내에서 시끄러운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무엇보다 1인 1표를 제외하고 과연 당원 중심의 정당을 만들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1인 1표가 당원주권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4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4년 전 도의원 공천심사비가 200만원이었는데 이번에는 400만원이었다.
대통령을 만들고 여당이 됐는데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자기들 혼자 만들었는가?
나 역시 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을 하면서 생업을 뒤로하고 많은 시간을 당에 헌신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두 배로 오른 공천심사비인가? 그뿐인가? 후보자 자격심사를 엄격히 한다고 했지만, 내가 지켜본 과정에서는 부적격 논란이 있었던 후보들까지 상당수 경선에 포함됐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선을 치르는 데도 500만원가량을 지출했다.
한마디로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고 나니 오히려 공천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선거는 고개를 들면 패한다고 한다. 민주당 정청래 지도부 아래에서 지방선거 후보들이 국민의힘보다도 많은 공천 관련 비용을 부담하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불길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결국 현실이 됐다.
또 하나 실망했던 일이 있다. 부산 벡스코에서 당대표가 온다고 해 지방선거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복잡한 부산 시내를 뚫고 행사장에 갔다. 정청래 당대표가 한 시간이 넘도록 강의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참 실망스러웠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강의라기보다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와 자신의 정치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더구나 비슷한 내용은 2018년 초에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지방선거 후보들을 모아놓고 자기 이야기만 길게 할 수 있는가?
참 실망스러웠고,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역위원장 선출은 어떠했는가? 지역위원장에 지원하려면 심사비 100만원을 중앙당에 내야 했다. 그런데 상당수 후보들은 면접도 보지 못하고 문자 하나로 탈락 통보를 받았다.그럴 바에는 왜 공모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면접조차 하지 않을 사람에게 왜 100만원의 심사비를 받는가?
당원주권 정당과 1인 1표를 주장하던 당대표 체제에서 지역위원장 공모 결과는 기존 지역위원장이 다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것 아닌가? 당대표를 선출할 때만 당원주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지역위원장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지역 당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다행히 김민석 후보는 며칠 전 방송에서 이재명 대표 시절처럼 최고위원회의를 공개하고 회계도 공개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선거를 한번 치러보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후보들에게 받은 이 많은 심사비와 경선비용은 어디에 사용하는가?
후보들에게 많은 돈을 걷으면서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후보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정치문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이 바로 구태라는 것이다. 김민석 후보에게 요청한다. 당의 운영을 투명하게 해주기 바란다.
막대한 국가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라면 회계 역시 당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지 않는가?
또한 돈이 없으면 공천심사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도 바꿔야 하지 않는가? 청년들에게 정치에 참여하라고 하면서 정작 정치에 도전하려면 공천심사와 경선 과정에서 수백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면 누가 쉽게 정치에 뛰어들 수 있겠는가.
1인 1표만이 당원주권은 아니다.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당원주권이고, 당의 회계를 공개하는 것도 당원주권이며, 지역 당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도 당원주권이다.
투명한 민주당, 돈이 없어도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민주당,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집권여당으로 바꿔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김민석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
이 글을 쓰면서 정청래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민주당의 한 당원으로서, 또 직접 당에서 활동하고 지방선거를 치러본 사람으로서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리고 당원주권 정당이라면 당원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당에 쓴소리를 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