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거의 안 마시는데 지방간이라고요?”
건강검진을 받고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소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술자리가 잦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보면 ‘지방간 의심’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술 좀 줄이면 되겠지.”
그런데 지방간은 이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 2만3천여 명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꼴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지방간이 생겨도 몸이 좀처럼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간이라고 하면 오른쪽 배가 아프거나 속이 불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방간은 흔히 ‘조용한 질환’으로 불린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증상이 나타난다면 피로감을 느끼거나 오른쪽 윗배가 불편한 정도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증상만으로 지방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피곤한 게 나이 때문인 줄 알았는데….”
“배가 좀 나온 것 말고는 멀쩡했는데….”
이렇게 생각했다가 검사 결과를 보고서야 지방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방간 진단을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술이다.
하지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방간은 생길 수 있다.
특히 복부비만, 과체중, 인슐린 저항성, 제2형 당뇨병, 높은 중성지방이나 비정상적인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지방간 위험과 관련돼 있다.
문제는 우리가 평소 너무 익숙하게 하는 행동들이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은 빨리 먹는다. 오후에는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다가 잠든다.
하루 이틀은 별일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몇 년씩 반복되고 허리둘레와 체중이 조금씩 늘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쌓일 수 있다.
질병관리청 역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비만뿐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 혈압과 지질 이상 등 여러 심장대사 위험요인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건강검진 결과를 볼 때 많은 사람이 AST와 ALT부터 확인한다.
숫자가 정상범위에 들어가 있으면 일단 마음을 놓는다.
그런데 간수치 하나만 보고 지방간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료진은 병력과 신체검사, 혈액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하며 필요하면 초음파 등 영상검사를 활용한다. 간 섬유화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가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난해 검진에서 지방간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해 간수치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스스로 “다 나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검진 결과를 의료진과 함께 확인하는 편이 낫다.
지방간을 검색하면 바로 따라붙는 말이 있다.
‘지방간에 좋은음식.’
커피부터 견과류, 채소, 생선 등 수많은 음식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음식 하나를 열심히 먹는다고 지방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 먹는 전체 식사량과 식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과체중이나 비만이 있다면 적정 체중을 향해 서서히 감량하고, 과식을 줄이면서 채소·과일·통곡물 등 건강한 식품을 선택하는 방식이 권고된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지방간에 좋다는 음식을 하나 더 챙겨 먹기 전에, 매일 마시던 단 음료 한 병이나 야식을 줄이는 게 먼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날에는 결심한다.
“이제 진짜 걸어야겠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가기 쉽다.
이번 질병관리청 연구가 눈길을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진이 건강한 식생활, 충분한 신체활동, 비흡연, 적절한 수면을 분석했더니 이 가운데 3가지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위험이 28.6%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 역시 체중계 숫자만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신체활동 자체도 지방간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거창한 계획보다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생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흔한 거라던데”라며 몇 년씩 방치할 일도 아니다.
지방만 쌓여 있는 단계에서 끝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염증과 간 손상이 동반되고 섬유화가 진행될 수 있다.
특히 비만이나 당뇨,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이 함께 있다면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방간 관리에는 의외로 특별한 비법이 없다.
먹는 양을 조절하고, 움직이고, 체중을 관리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잠을 제대로 자는 것.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적힌 ‘지방간’이라는 세 글자는 당장 몸이 아프다는 경고라기보다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을 한번 돌아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성인 4명 중 1명.
이제 지방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이 기사는 일반적인 건강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거나 증상이 지속된다면 의료진과 상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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