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사형당할 것 같은데.”
한 시사 유튜브 방송에서 나온 이 한마디가 50년 전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불러냈다.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1975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지 불과 18시간 만에 8명의 형이 집행됐고, 32년 뒤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형’ 발언을 웃음과 함께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방송 이후 비판이 거세졌고 해당 영상은 삭제됐다. 발언 당사자인 시사평론가 김준일 씨도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역사적 비극은 어디까지 웃음과 풍자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논란은 지난 26일 JTBC 유튜브 시사프로그램 ‘장르만여의도’에서 시작됐다.
조국혁신당의 당명 변경을 이야기하던 중 김준일 씨가 ‘민주혁신당’이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다른 출연자가 이를 줄여 ‘민혁당’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씨가 “다 사형당할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웃었고 주변 출연자들도 함께 웃었다.
방송만 떼어놓고 보면 몇 초간의 농담일 수 있다.
하지만
민혁당
,
사형
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갖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인혁당 사건 희생자를 조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제작진은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이 논란을 이해하려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974년 박정희 정부는 민청학련의 배후에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있다고 발표했다.
관련자들은 국가변란을 획책했다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 가운데 8명의 사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형 집행 속도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자료에 따르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불과 18시간 만인 다음 날 새벽부터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재판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오늘날까지 이 사건을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사형이 집행됐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유족과 시민사회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발표했고,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역시 용공조작과 고문수사, 공판 과정, 사형 집행 등 사건 전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사형이 집행됐던 관련자 8명에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 집행으로부터 약 32년이 흐른 뒤였다.
국가는 이미 목숨을 되돌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단순한 과거 정치사건이 아니다.
국가권력과 사법제도가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았을 때 그 잘못을 나중에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논란이 커지자 김준일 씨는 사과했다.
김 씨는 인혁당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하면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변명의 여지 없이 제 불찰이자 잘못”이라는 취지로 밝혔다.
유가족에게 전화로 사과했으며 직접 찾아가 다시 사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장르만여의도’ 제작진 역시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은 조국혁신당을 조롱하고 비판하는 것은 비평과 언론의 자유 영역이지만, 사법살인 희생자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사용하며 웃은 것은 도를 넘었다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조국혁신당은 법적·행정적 대응도 예고했다.
진보당 역시 인혁당 사건을 농담과 조롱의 소재로 사용했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풍자와 조롱은 정치 콘텐츠에서 흔히 사용된다.
정치인과 정당, 정책과 권력을 비꼬고 웃음의 소재로 만드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권력을 향한 풍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풍자의 대상이 권력자인지, 국가폭력의 희생자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당한 8명은 이미 자신의 목소리로 항변할 수도 없다.
사형이 집행되고 32년이 지나서야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그 가족들에게
사형
이라는 말은 역사책 속 단어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단순히 “농담 한번 잘못했다” 정도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포에서
인혁당
을 입력하면
인혁당 사건
,
김준일 인혁당
,
인혁당 재건위
,
인혁당 사건 재심
같은 검색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50년 전 사건을 몰랐던 사람들까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다시 사건을 찾아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다시 봐야 할 것은 한 방송인의 실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8명이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처형됐는지, 왜 32년 뒤에야 무죄가 선고됐는지, 그리고 왜 그 사건을 지금까지 ‘사법살인’으로 기억하는지다.
사과와 영상 삭제로 방송 논란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역사까지 함께 지워져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몇 초짜리 농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5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