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후손'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12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한일병합 어전회의서 조인 적극 찬성…일제로부터 자작 작위·은사공채 5만원 2004년 증손이 파주 임야 2,525평 반환소송…“윤덕영 후손” 다시 검색되는 이유 “이완용은 아는데 윤덕영은 누구지?” 최근 윤덕영 후손, 친일파 후손, 친일파 명단 등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윤덕영이라는 이름도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윤덕영은 단순히 일제강점기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논의한 어전회의에서 조인을 적극적으로 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이미 내 명의로 등기까지 끝난 땅인데, 이것도 국가가 가져갈 수 있을까?” 최근 친일재산 환수 문제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친일파 후손이 가진 재산은 어디까지 환수 대상이 되는지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명의가 누구에게 있느냐만으로 환수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 재산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친일행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다.반대로 조상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됐다는 이유만으로 후손이 가진 집과 땅, 예금 등 모든 재산을 국가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친일재산환수법, 12월...
내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광복절을 맞아 ‘친일파 후손 확인’, ‘친일파 명단 확인’, ‘친일 행적 확인’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조상이 친일 행적을 남긴 인물인지, 반대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인지를 직접 확인해보려는 것이다.하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조상의 이름을 입력해 나오는 게시물 하나만 보고 친일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른바 ‘친일파 명단’ 가운데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자료도 있기 때문...
최근 기독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주술에 대한 반대적 입장이 산발적, 연쇄적으로 나왔지만, 8일에는 한국기독교회협의회라는 공적기구를 통해 이러한 우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개신교 중 가장 많은 교단이 연합체를 이룬 기구로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러한 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술에 대한 우려에 대하여 한국교회 성도님들께 드리는 목회서신을 발표하면서 파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서신에는 ...
법무부, 친일반민족행위자 4명의 토지 11필지 국가 귀속 착수- 친일파 이규원, 이기용, 홍승목, 이해승 후손에 대하여 이전등기청구 등 - ○ 법무부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던 친일반민족행위자 귀족 등 4명의 토지 11필지에 대하여 2. 26. 그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 대상 토지는 서대문구 홍은동, 김포시, 남양주시, 파주시 등에 있는 11필지 공시지가 합계 27억 원 상당이며, 최근 2021. 2. 법원에서 처분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
학창시절 벚꽃은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마음 한 구석에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막상 벚꽃길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벚꽃을 설령 일제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이용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누리면 안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벚꽃을 평화의 상징으로 삼았으면 좋을려만, 일본은 이 꽃을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자연까지 악용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제국주의 본능을 발동한 것입니다. 일제는 벚꽃을 영토확장의 상징으로 삼았고,...
최근 어떤 분이 진해라는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현 진해지역은 조선시대 웅천현이었으나 일본이 진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진해를 웅천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분의 말대로라면 창원시 진해구가 아닌 웅천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해라는 명칭이 벌써 100년이 넘게 쓰여졌고, 전 국민에게 각인된 상황에서 굳이 낯선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한가 싶습니다. 차라리 일제가 진해라는 도시에서 무얼 하였고, 그 속에서 ...
예전에는 일본의 한국 침략 우려가 있으면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이따금씩 시위를 곤 하였습니다. 하지만언젠가부터 시위를 못하게 할려는 건지, 환경미화를 할려고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단으로 동상 주변을 장식하였습니다. 이순신 동상 앞에 가면 무언가 마음 한가운데에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 동상은 1951년에 세워진 것으로 광화문 동상(1968년)보다 훨씬 이전의 것으로 자부심도 가질만 한데,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 찜찜한 구석을 남길까요.? 그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있는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
일제시대에 진해주민들은 일제군부의 신시가지 조성으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경화동으로 강제이주 당합니다. 그리고 경화동으로 이주당한 주민들은 신시사지 조성을 위해 노동력을 일제에 착취당하게 됩니다. 해방 후 일제가 쫓겨난 후 예전에 빼앗긴 땅이 다시 진해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다른 곳에 비헤 진해주민들의 반일감정은더욱 강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일감정이 강햇던 옛 일본해군의 도시에 대한민국의 해군을 창설할려는 이가 바로손원일입니다. 손원일로서는 진해주민들의 해군 창설에 대한...
제황산에대한소개를 보면, 모노레일, 군함모양의 전쟁기념관, 과거 러일전쟁기념탑이 있었던 곳, 365계단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조선의 자주권이 완전히 상실된 근거를 보여주는 산으로 보입니다. 제황산은 원래는 산세가 부엉이가 앉아 있는 곳 같다고 하여, 부엉등, 부엉산이라고 하였으며, 일본인들은 추구를 닮았다고 하여 가브토산(두산공원)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해방후 "조선지지" 자료에 있는 제황산이란 이름을 되찾은 것입니다. 제황산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황제가태어날 명당이라는곳입니다. 조선에서는 명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