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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숨어 있는 윤효중, 이은상

기사입력 2020.08.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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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일본의 한국 침략 우려가 있으면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이따금씩 시위를 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위를 못하게 할려는 건지, 환경미화를 할려고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단으로 동상 주변을 장식하였습니다.

     

    이순신 동상 앞에 가면 무언가  마음 한가운데에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 동상은 1951년에 세워진 것으로 광화문 동상(1968년)보다 훨씬 이전의 것으로 자부심도 가질만 한데,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 찜찜한 구석을 남길까요.?

    그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있는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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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의 사진을 보면 끝부분에 "윤효중은 조각하고, 이은상은 글을 짓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안내판에는 "한국 조각계의 권위자인 윤효중 선생이 제작하였는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한 찬문이 씌여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윤효중이 과연 한국 조각계의 권위자일까요. 그리고 이은상은 과연 이순신 장군 앞에 설 자격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승만은 어떨까요.

     

    윤효중은 1943년 부녀자들의 일본전쟁 봉사를 미화한 千人針(천인침)을 제작한 바 있으며, 1944년에는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아버지 영령에 맹세하다"로 경성일보 사장상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군복을 입은 소년이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전쟁 승리를 염원하는 형상입니다. 이 외에서 조선 여성들의 전쟁협력을 찬양하는 듯한 1944년의 "현명"이라는 작품, 1945년에는 일본 자살특공대의 카미카제 장교를 기념하면서 조선 총독의 아들을 묘사한 '아베소위상'을 제작했습니다.윤효중은 친일 전력이 문제 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중등과정 동문이며, 친일파를 등에 엎은 이승만이게에 해방 후 이승만의 비호를 받고, 조작계 및 미술계의 지배자로 군림합니다. 하지만 4.19혁명 후 이승만이 쫓겨나자 윤효중도 힘을 잃게 되어  1966년에는 일본으로 이주하여 일본인으로 살다가 1967년 10월 7일에 일본에서 객사한 인물입니다. 


    이은상 또한 친일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며, 무엇보다도 친독재 전력이 뚜렷한 인물입니다. 1960년 당시 이승만 지원유세에 나서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와 같은 분은 이승만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15의거를 '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하면서 마산 시민의 자제를 당부하였습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는 공화당 창당선언문 작성, 유신지지 성명, 긴급조치를 옹호하는 관변단체 '총력안보 국민협의회' 의장을 맡았습니다. 전두환 시절에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라는 글을 기고하고, 국정자문위원이 되기도 한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전형적인 친일파인 윤효중이 조각하였고, 항상 권력이 편에 서서 독대를 옹호하는 이은상이 찬문을 썼으니 과연 이순신 장군은 저 세상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마디로 국민들이 찬양하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까지 친일파와 독재자들을 찬양한 자들의 의도가 담긴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어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하지만 다시 건립은 못하더라도 안내판에까지 윤효중과 이은상을 찬양하는 글을 넣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안내판이라도 제대로 설명하여 이순신 장군 동상의 아쉬움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이순신장군의 뜻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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