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왜군 종군신부 세스페데스를 기념해야 하나

기사입력 2020.08.27 10:04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진해 웅천에 가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쪽에는 왜군의 종군 신부에 불과한 세스페데스를기념하여 창원시가 시민의 세금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였던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90802_123905.jpg

    세스페데스는 조선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서양선교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도였던 왜장 고니시유키나가의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로서 조선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왜군을 상대한 신부입니다.  한마디로 전시 왜군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종군신부입니다.  이는 조선의 관점에서 왜군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임화가 '신문학사'에서 세스페데스는 '서구의 사정과 천주교의를 전했다고는 하나 이렇다할 흔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조선을 위한 세스페데스의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20190802_124103.jpg

    이는 세스페데스가 고니시에게 보낸 편지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 날 저를 방문해 성 안에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편지들을 전했습니다. 그는 편지를 읽고 나서 제가 조선에 도착한 사실에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대화를 나눴습니다.  또한 여러 성으로부터 많은 일본군 이교도가 자기를 방문하고자 이곳에 자주 출입하기 때문에  자기 동맹자들의 저택과 거처가 있는 이곳 성의 낮은 곳에 제가 머무르는 것이  그리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비센테 베에몬과 함께 성의 높은 곳에 머무르면서  가톨릭교도들이 그곳으로 저를 방문하게 하고 고해하도록 했습니다.
    - 루이스 프로이스, 『임진란의 기록』

     

    이 편지의 뜻대로 세스페데스는 비센테 베에몬과 같은 높은성, 바로 웅천왜성에 머물렀습니다. 일본군 이교도들의 방문을 위해 웅천왜성에 거주하였는데,

    과연 조선인들을 만나 선교활동을 했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img.jpg

     

                                                 (웅천왜성)

     

    실제로 세스페데스의 편지가운데 조선에 관한 언급은 그리 없으며,  있다고 한들 조선은 매우 춥다거나 일분의 카톨릭교도들이 굶주림, 질병 등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단지 조선인에 관한 것은 포로로 끌려온 조선 병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내용인데,  이를 과대해석해서 마치 조선을 위해 공헌한 신부로 칭송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스페데스가 1년 6개월동안 조선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웅천왜성을 봉쇄했던 시기이기에 조선인을 만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스페데스의 편지를 수록한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의 '일본사'에도  이순신을 “조선 국왕과 가까운 친척 사이이며 해안 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장수”로 소개하거나  조선과 중국의 국경에는 넓은 모래사막이 있다는 부정확한 내용이 많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은 “항복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조선군은 “해적”과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즉, 세스페데스의 편지를 담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못한 데,세스페데스가 조선을 위해 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과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수 있었던 배경에  외국 선교사의 지원이 상당부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큐슈의 영주 및 사무라이에게 서양식 화승총을 전달한 이도  스페인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 사비에르 선교사였습니다.  영주와 사무라이들에게 손쉽게 전투에 승리하게 해주고, 인심을 얻어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큐슈지방의 영주인 고니시 유키나가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스페인 선교사들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대면하게 하였다는 것 자체가  도요토미에게유리한 지형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때  고니시는 선봉대였던 1군단의 수장이었고,  부산 동래 상륙시에는 군선에 둥근원형의 십자가 마크를 새긴 군기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대원 전원이 카톨릭 세례를 받은 신자들로 구성되었고,  그 뒤에 세스페데스 일행의 종군신부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즉, 세스페데스가 임진왜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진해지역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기념비 등이 많으며,  안골포 해전으로 왜군을 격퇴한 사실도 있습니다.  또한 세스페데스 공원 맞은 편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스페데스 공원이 웅천에 있는 것은 선조들의 노고를 비웃는 처사가 아닐까요?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