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4·19혁명 유공자에 대한 虛와 實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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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및사설

국가보훈처, 4·19혁명 유공자에 대한 虛와 實 2편

2편

2010년 이명박 정부시절 4.19혁명 유공자 발굴 선발과정에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학예연구사를 선정하여 담당주무관과 담당사무관 사이에 배정하였다. 또한 4.19혁명 유공 포상자 선발에 엄선을 기하도록 심사위원도 4.19혁명에 참여(4.19 민주혁명회 회원, 4.19혁명 공로자회 회원)하였거나 동일세대의 원로학자 가운데 4.19혁명에 인지도가 깊고 공신력을 갖춘 학계인사로 구성(국가보훈처 공훈 심사과-3398(2012 .10. 18)된 공적심사위원회에 의해 273명을 추가 유공자로 4.19혁명 50주년에 포상하고, 2012년에도 40명을 포상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9년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달리 4.19혁명에 참여하였거나 동일세대의 원로학자 가운데 4.19혁명에 인지도가 깊고 공신력을 갖춘 학계 인사들은 전면 배제하고, 새로운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은 11명과 인적사항이 확인된 40명을 포함하여 51명을 국무회의에서 서훈 의결하였다(국가보훈처 공훈-2495(2020.4.7.)

 

그 해 2019419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식장에서 금년 발굴자 40명이라고 숫자를 발표하고 일시에 보훈지청을 통해 건국 포장을 전수하였다.

 

20204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장에서 2019년 공적심사위원에서 주소가 확인되지 않았던 11명의 주소를 찾아 건국포장을 전수하였다.

 

이날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금년까지 4·19혁명 쉰한 분, 오늘 다섯 분 유공자와 가족들에게 직접 포장을 수여하게 되어 매우 뜻 깊습니다.” “정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4·19혁명 참가자들의 공적을 발굴해 한분 한분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에 새기고 기리겠습니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기념사에서 2020년 추가 수상자가 11명 이라는 숫자는 대통령께서도 밝히지 않았다.

 

국가보훈처에서는 201951명을 선정하고, 공적심사위원회에서 탈락한, 800여 명에게 419일 개별적으로 문서를 보냈다.

통지문에 공적심사기준을 설명하면서 2010년 통지문을 2020년에 복사한 듯 문서 내용이 한자도 틀리지 않았다. 문서 내용면에서는 심사위원에 4.19혁명에 참여하였거나 동일 세대의 원로학자 가운데 4.19혁명에 조예가 깊고 공신력을 갖춘 학계 인사를 전면 배제하였는데도 아래와 같이 2010년 문서와 똑같은 내용을 보냈다.

 

구체적으로 당시 앞장섰던 필자 후배 이언식(중앙대학 신문학과 2학년)은 경찰들에게 끌려가 구타로 좌측 늑골 골절 부상으로 입원하여 당시 중대학보(1960.5.1.)에 대서특필로 부상 입원자 명단에 게재되었다. 중대학보(사본)와 대한적십자의 진료 사실 확인서까지 제출하였는데 심도 있는 심사 없이,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당시 시위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문서였다.

1, <이언식> 선생께서 제출하신 서류와 자료를 심층적으로 검토, 심의하여 이루어진 4.19혁명 유공자 포상 심사 결과 안내입니다

 

2, 4.19혁명 유공자 공적심사는 혁명에 참여하였거나 동일 세대의 원로학자 가운데 4.19혁명에 조예가 깊고 공신력을 갖춘 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공사심사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3. 공적심사위원회는 포상 심사기준에 따라 시위의 계획 또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사실이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되는 경우에 포상을 하였습니다

 

4. 귀하께서는 시위 계획 또는 주도 사실에 관한 객관적 입증자료 미비사유로 포상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리니 이 점 깊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는 달리, 국가보훈처 산하 4·19국립묘지 관리사무소에서는 4.19혁명 서현무()김태년() 영혼부부를 비롯한 450여 명 열사 영령들의 이야기를 모아 민주열사들을 만나다라는 4·19혁명 관련 국가보훈처의 최초의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을 펴낸 방형남 소장은 국립4.19민주묘지를 지키며 혁명열사들의 뒷바라지와 유가족과 매년 100만이 넘는 방문객들에게 4.19혁명의 위대성을 알리는데 헌신하고 있다. 방 소장은 원래 언론인 출신으로서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지켜봤던 평소의 소신과 뜻을 이 책에 담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책에서는 필자를 2쪽에 걸쳐 위 사실을 소개하였다.

 

방 소장은 임기제라, 지난 7월 국가보훈처를 떠났다. 참 아쉬운 떠남이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머리속에 떠올려 보면서 필자 친지가 쓴 책의 말미 부분이 문득 떠오른다. 전 심옥섭 서경대학교 겸임교수는 <내 삶의 길잡이 정직 그리고 최선’ >에서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흘러보는 눈물이었다. 요지는 자네는 외부에 재임을 부탁할 사람이 없는가? 라는 질문으로 재임의 불가능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셨고 집에서 좀 쉬고 있으면 외부에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좀 떨리는 발걸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책상을 정리하면서 짐을 챙겼다. 199736일 그러니까 상무이사라는 직을 끝으로 만 30년의 은행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좀 서글펐다.”

이 글이 방 소장이 직을 그만둘 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아니하였을까 짐작해 본다.

모두 자기직업에 정직 그리고 최선을 다 하신분 이라고 알고 있다..

두 분과 같이 떠나는 그 날까지 정직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한다.

앞으로는 한 부처의 사려 깊지 못한 업무처리가 진정성이 없게 보이는 대통령 담화가 된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 국가보훈처에 제대로 전달되어 실천되기를 바라면서, 지난 325일 중앙대학교 동문회보(331)에 실린 필자(金正一 정치외교학과 3학년)와 동명이인(同名異人)4·19혁명 당시 교육학과 3학년 김정일(金定一) 4·19혁명공로자회 부회장이었던 한국체육대학교 명예교수의 글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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