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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에 도올 김용옥 교수가 쓴 책 ‘슬픈 쥐의 윤회’에 대해 일독(一讀)을 권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0년 4.19혁명 60주년을 앞두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 책을 권한 것으로 안다.
놀랍게도 ‘슬픈 쥐의 윤회’ 속에서 언급한 의혈유서(義血由緖)는 필자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26년 전인 1995년 11월 19일 4·19민주묘지에 안장된 서현무 열사의 잘못 기록된 묘비 내용을 바로잡고, 영혼 결혼한 서현무(여), 김태년(남) 열사와 합장시켰다. 중앙대생들이 6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4.19혁명 당시 대학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최후세력’이었다는 본인의 글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 내용은 당시 동아일보를 비롯하여 여러 언론 매체는 물론 ‘국정신문’에 까지 소개되었고, 그 공훈으로 필자는 1997년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에서 국립4.19민주묘지소장의 추천(공적조서 작성)으로 4·19혁명 관련 최초로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받았다.
방형남 국가보훈처 국립민주묘지소장(좌)이 2020년 “민주열사들을 만나다”를 퍼냈다. 그 책에 필자(우)를 2쪽에 걸쳐 23년 전 전임소장의 공적조서를 확인하는 글을 남겼다. (2020.3.10.)
국가보훈처에 소장하고 있는 국립4.19 민주묘지관리소장이 작성한 김정일 공적조서에 적힌 아래 내용을 보면, 4.19혁명 당시 활동한 흔적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첫째 “1960년 4월 19일 당시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재학 중 남다른 의협심과 민주화 투쟁의욕으로 4.19혁명 활동에 적극 가담하였는바 186명의 희생자 가운데 최후의 저항세력인 중앙대학교 학생 중에서도 가장 맹렬하게 독재 탄압정치에 항거하여 동문인 서현무(당시 법대2년)와 함께 대열의 최선봉에 참여하여 독재정치를 타도했고 그 산 역사의 증인으로 민주화를 앞당긴 경력이 있다.”
둘째 “1993년 미완의 혁명 4.19가 ‘의거’에서 ‘혁명’으로 재조명되고 4.19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개인묘지 등에 안장되어 있던 혁명 열사들이 4.19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과정에서 영혼결혼을 했던 김태년(중앙대학교3년) 서현무묘 및 묘비가 떨어져 있었으며, 당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다 경찰에 붙잡혀 무차별 구타를 당한 뒤 3개월 후 사망한 서현무의 묘비 내용을 ‘시위 중 총상을 입고 사망’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는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하여 서현무 죽음을 입증할 자료를 찾아나서 시청과 동사무소, 서씨의 동창이나 동문 출신 중.고등학교, 국가보훈처, 그의 유족들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1995년 5월에 이 사실을 4.19국립묘지 관리소장에게 청원하였다. 6개월 후 국립묘지관리소에서는 서현무 열사가 세상을 뜬지 35년만인 1995년 11월 19일 영혼부부는 합장이 이루어졌으며, 잘못된 묘비내용은 바르게 정정되게 이르렀다.”
이 사실을 확인 받으러 지난해 4월 1일 국가보훈처 민원인(4.19혁명 민주혁명회, 회원 신청 중) 고(故) 은천기 부인 이창자 여사와 함께 국가보훈처를 방문하였다. 종전 직제에 있던 담당 주무관, 담당 사무관 직은 없어졌으며, 오병한 학예연구관과 서기관 김이주 발굴과장(이후 부이사관으로 승진) 단 둘이 지키고 있다. 민원실에서 김이주 발굴과장과 면담하고 위 사실을 확인받았으며, 그 날짜로 국가보훈처에서 그 사실을 필자에게 문서로 알려왔다.
되돌아보면 4.19혁명, 이듬해 5.16군사정변 후 바로 혁명을 의거로 격하시키고 4.19의거 관련 유공자 포상작업을 시작했다. 제3공화국 수립 전.후 1962~1963년 2차에 걸쳐 447명, 그리고 유신헌법 개정 전인 1970~1971년 2차에 걸쳐 67명,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그후 필자는 25년 후에 4.19의거의 유리벽을 깨고, 문민정부에서 주는 4.19혁명과 관련 인정한 국가보훈처장으로부터 최초로 표창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도울 김용옥 교수에 “슬픈 쥐의 윤회”에 축약되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일독을 권했고 국가보훈처에서는 ‘민주열사들을 만나다’를 발간하였다.
4.19혁명 당시 주모자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당한 수기를 서현무 열사와 같이 중대신문에 남긴 고 은천기 후배 부인 이창자 씨와 필자. 중앙대학교 의혈탑 영령들 앞에서 (2021.4.19.)
이는 4.19혁명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순간이었다.
필자의 국가보훈처장 표창 수상 6년 후 노무현 대통령 4.19혁명 관련 유공자 포상을 2004년과 2007년 2차에 걸쳐 165명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다음2편에 계속됩니다)
(기고문) 여행작가 김정일 (金正一)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사업회 회장 ,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 (전 정보통신부 홍보담당관)
( 본 기고문은 본사의 편집방침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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