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뉴스 뉴스목록
-
허성무 창원시장, 태풍‘마이삭’대비 피해우려지역 현장 점검허성무 창원시장은 2일 제9호 태풍 ‘마이삭’이 북상에 따라 집중호우 및 강풍 피해가 우려되는 재난취약시설 및 시설 재배농가, 주요 건설현장을 잇따라 찾아 긴급 점검했다. 허 시장은 이날 의창구 동읍에서 파프리카 등 시설채소와 과수농가를 방문했으며, 해안가 저지대인 진해 용원지역 배수펌프장과 주요 건설ㆍ건축현장 등을 둘러봤다. 또 허 시장은 펌프장 정상 작동 여부 상시확인, 강풍으로 인한 낙하물 요인 사전 제거, 건축현장 타워크레인 안전조치, 농작물 배수로 확보 및 과수 지수목 설치, 배수펌프 및 양수기 전진 배치 등을 살폈다.마이삭은 과거 우리나라에 많은 피해를 입힌 지난 2003년 태풍 ‘매미’와 이동경로가 유사할 것으로 예상돼 창원지역에 많은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시는 만조 시간대 확인을 통한 주민 사전대피, 해안가ㆍ방파제ㆍ하천 등 위험지역 재난 안전선(Safety Line) 설치, 낚시객ㆍ관광객ㆍ주민출입 사전통제 등 인명피해 최소화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허성무 창원시장은 “태풍 피해 최소화를 위한 안전조치 강화로 단 한건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주기를 바란다”며 “태풍 ‘마이삭’은 강한 바람을 동반한 ‘강’급 태풍으로 2일부터 3일까지 창원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돼, 시민들은 기상청 태풍경로 및 기상특보에 유의해 위험시간대 외출을 금하고 실내 안전한 장소 머물기 등 태풍 대비 주민행동요령을 잘지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창원시 BRT 사업, 진해는 해당안됨창원시가 가음정에서 마산 육호광장까지 가는 BRT를 도입하여 대중교통의 큰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BRT를 도입한다면 시내버스로는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리던 불편을 상당부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은 창원시민이지만 BRT 사업을 남의 동네 이야기로밖에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진해구인인 것이다. 이 노선을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진해구는 해당이 없다. 진해를 들어오기 위해서는 터널이라는 것과 사업성 문제가 있기에 당장은 어렵다는 것을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진해구를 외면해서도 안될 것이다. (사진: 창원시) 현재 진해구의 시내버스 체계를 보면 상당한 문제점을 볼 수 있다. 특히 자은3지구, 웅천, 용원 쪽이 더욱 불편한 부분이 있다. 자은 3지구의 경우에는 시내버스가 317번 155-1번 버스 두 대 운행한다. 317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25분에서 50분 정도이고 155-1번의 경우는 70분이다. 한마디로 이 지역의 주민들은 시내버스 이용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웅천 남문신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06번의 경우는 배차시간이 40-45분, 306-1번 하루에 아침시간만 2대 운행한다. 웅천에서 남문으로 순환하는 버스 330번은 20분마다 운행한다. 순환버스의 경우는 남문에서 웅천으로 가서 환승하여 진해나 용원으로 환승하도록 만든 버스이다. 이 외에 남문에서 수도마을에 가는 350번 버스가 하루에 7대정도 다닌다. 최근에는 757번 좌석버스가 남문일대를 돌아 용원이나 진해, 창원으로 나간다. 그런데 757번 좌석버스로 보다 빨리 창원이나 진해, 용원으로 갈려고 승차하는 데, 남문일대를 모두 돌다보니 10분은 더 소요하여 좌석버스로서의 용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용원에서 진해로 오는 시내버스는 그나마 많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웅동, 웅천, 어은동을 다 지나치다보니 용원에서 속천까지 올려면 40-50분정도 소요된다. 너무 오래 걸려서 예전에는 부산에서 진해로 오는 동아여객 시외버스를 타고 오곤 했는 데, 지금은 태워주지 않는다고 한다. 용원에서도 새로생긴 신도시인 신항만 같은 경우는 305번 353번 305-2번 버스가 다니지만 이들 버스의 배차시간 1시간 이상이 되다보니 시내버스 이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진해의 경우를 보면 용원에서 진해 창원, 마산으로 가는 급행버스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시간을 단축하여야 창원시와외 물리적, 심리적 거리도 단축되고 불편함도 감소시킬 것이다. 또한 자은 3지구나 남문, 신항 신도시에 마을버스를 대폭 늘려야 한다. 타 도시의 경우는 25인승 마을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하지만 창원의 경우는 동읍을 제외하곤 대형버스가 운행한다. 마을버스를 운용하여 배차시간을 줄여 시민들의 불편을 감소시켜야 할 것이다. 이번 창원시 BRT 사업을 보는 진해구민들은 남의 이야기로 들리기만 한다. 창원시는 진해에 BRT를 도입하긴 어려워도 그동안 게속 지적되었던 대중버스의 노선이나 배차 시간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창원시 진해신항 예정지역 주민지원사업 추진 기대해양수산부(장관 문성혁)는 8월 18일(화) 국무회의에서 「신항만건설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통과되어 8월 19일(수)부터 개정된 「신항만건설 촉진법」과 함께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통과된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은 올해 2월 18일에 신항만건설 예정지역에 대한 지원계획 수립과 지역 사업체에 대한 계약특례, 지역 주민에 대한 고용우대 등을 반영한 「신항만건설 촉진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원계획의 수립, 승인, 변경, 취소 등의 절차와 지역사업체에 대한 계약 특례기준 등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을 담고 있다. 창원시(해양항만수산국장 김성호)는 경상남도와 함께 그간 신항지역 주민지원을 위한 법령 개정 및 특별법 마련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8월 19일(수)부터 개정된 「신항만건설 촉진법」 및 시행령이 시행됨에 따라 그동안 신항(창원) 지역에서 법적 근거가 없어 시민에게 지원하기 힘들었던 사업에 대하여 해양수산부와의 협의를 통해 추진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올해 초부터 창원시는 진해신항 예정지역 주민지원을 위하여 해양수산부, 경상남도, 수협과 함께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회의를 계속 진행해 오고 있으며 그 성과로 해양수산부로부터 제2신항의 명칭을 “진해신항”(8월말 제4차 항만기본계획 고시 예정)으로 신항지역 교통편의를 위한 마천~웅동배후단지 1단계(2,456m) 진입도로, 시민을 위한 연도 해양문화공간(233,923㎡) 조성을 확정받았다. 앞으로도 창원시는 진해신항 민관협의체를 통하여 신항만건설 예정지역 주민지원을 위한 해양수산부와의 협의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
경화동 조천마을의 덕주공원경화동 두산위브 아파트와 경화역 사이에 덕주 공원이 있습니다. 또한 경화동 조천마을 뒤편의 장복산에는 덕주봉이 보입니다. 진해에 살면서도 이 공원과 봉우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나가면서 무슨 공원정도 있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덕주공원은 2011년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추진위원회가 경화동 조천마을에서 출생한 김덕주 이인(異人)을 기려 지역주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고자 만들었으며, 2017년 경화동 두산위브아파트가 기부체납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보강해 세워젔습니다. 김덕주는 일제강점기 때의 실존인물로 축지법과 예언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하여 그를 지역 사람들이 '이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김덕주에 관한 것은 '진해의 땅이름이야기(2000)'란 책에 2페이지 가량 나오는데, 이 자료는 경화동에 사는 김재석 씨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9년에 기본내용은 비슷하나 약간의 다른 각도로 서술한 '진해스토리"란 책이 있을 뿐입니다. 이 책들은 김덕주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경화동 제피네 조천마을에 '김씨'이고 '덕주' 또는 '덕조'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초인적인 힘과 축지법, 미래를 예언하는 힘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은 그를 '이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장복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들을 붙여서 지은 바위집에서 살고 있었는 데, 직접 이 바위들을 짊어지고 날라서 지었다. 출입문은 통으로 된 바위 한개로 되어 있어 보통 사람은 도저히 문을 열수 없었다. 이 집을 '덕주바위'라고 불렀으며, 일본인들은 '선인굴'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풍화 등으로 인해 소실되어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그 곳으로부터 서남쪽으로 200미터 지점에 그가 사용하던 덕주샘이라는 우물이 있다. 이 곳은 높은 산 바위틈에서 사철 변함없이 물이 흘러내려 사람들이 이곳을 신성히 요기고 촛불을 켜 고사를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 평소 그의 머리카락은 자라나는 대로 두어서 치렁치렁했기 때문에 지금도 머리를 단정히 하지 않는 사람을 덕주머리 같다고 한다. 그는 장차 난리가 나면 양식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비지나 엿 찌꺼기를 모으기도 하고 술지게미나 솔잎을 주식으로 삼았다. 밥이 먹고 싶을 때는 제피내에 사는 친척집에 찾아가서 얻어 먹었다. 그의 에언은 실제로 맞았으며 그 가운데 후세까지 전해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흰 다리가 오면 나라가 망한다' 이 예언은 일본해군육전대가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려고 측량을 하러 올 때 흰 행건을 두르고 온것을 예언. 둘째, '한일거리에 큰 도시가 생길 것이다' 이 예언은 한일거리리가 도시계획으로 경화동이란 직각형 도시가 만들어질 것을 예언. 세째, '5일장이 옮겨올 것이다' 이 예언은 풍호동 풍덕개장이 일본 해군의 비행장 건설로 경화동으로 옮겨 올 것을 예언 넷째, '웅동에서 뱀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올 것이다' 이 예언은 웅동 아홉냇골의 끝줄기가 되는 심동, 평창 등의 마을 일대가 수언지가 되어 그 먼 곳에서부터 물을 끌어 올 송수관이 부설될 것을 예언 다섯째, '병똥같은 집에 살게 되면 세상 다 된줄 알라' 아마도 이 예언은 오늘날 아파트를 뜻하여 주택난 시대가 오면 인심이 각박해질 것을 예언 이인 김덕주는 일본헌병의 불심검문을 받고, 불응하여 달아나다 일본이 장목산까지 수색을 하러오는 것을 보고 김해 장유면으로 피신한 후 아무도 그의 행적을 알수 없다고 한다. 오늘날 산악인들이 김덕주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해서 장복산에 '덕주봉'이라는 표것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에 나오는 것들은 덕주 공원에 팻말이나 조형물 등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특히 '덕주토우상'은 주민들이 직접 황토를 빚어 만든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외에 '경화동으뜸마을만들기추진위원회'는 2013년에 이인의 전설을 담은 "덕주 할아버지와 꽃순이" 동화책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경화동 뒤편의 장복산에는 '덕주봉'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인 김덕주가 살았다는 곳입니다. 2014년 장복산 누리길을 창원시가 추진하면서 자연훼손 논란을 줄러 일으키기도 했던 곳입니다. 덕주봉을 전망대로 만들면 덕주봉이 완전히 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곳을 산책로로 만들다보니 주변 바위에 못을 박는 등 자연훼손 논란이 었있던 곳입니다. - 전망대가 덕주봉을 가린다는 지적이 일었던 등산로 테크- 경화동에는 벚꽃으로 유명한 경화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행객이 거치는 덕주봉, 그리고 경화역 뒤편의 덕주공원도 있기에 더욱 경화동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창원시, ‘지역 감염 확산자’ 강력한 처벌 촉구창원시(시장 허성무)는 지난 28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 창원51번 확진자를 역학조사 위반과 검사 거부, 경상남도 행정명령 위반으로 고발했으며, 검사에 불응하거나 연락이 불가한 11명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고 31일 밝혔다.창원51번 확진자의 경우 전세버스를 타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인솔자가 제출한 명단에는 누락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시는 창원51번과 책임인솔자에 대해, 확진자의 입원치료비뿐만 아니라 접촉자의 자가격리, 진단검사, 방역 등에 소요 된 모든 비용을 산정해 금일중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할 예정이다.시는 지난 8월 29일 56번(경남230) 확진자 발생 이후 이어 57번(경남235), 58번(경남236) 2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다.시는 이번 지역 감염 확산에 따라 신월고등학교 관련자 총482명을 검사(전원 음성)하였고 현재 34명의 밀접 접촉자는 자가 격리, 동선 노출자 448명은 능동감시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두산공작기계 관련자 총1,535명을 검사하여 현재 기준으로 양성 5명(창원54~58), 음성 1,521명, 9명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에 따르면 추가로 발생한 57번, 58번 확진자는 성산구 거주자로 지난 28일(금) 두산공작기계 내에 설치 된 이동형 선별진료소의 전수검사를 통해 양성으로 확인되었으며, 57번 밀접접촉자 5명은 전원 음성이고, 58번의 밀접접촉자 12명은 검사 결과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허성무 창원시장은 “한 사람의 거짓말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유발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앞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하여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코로나19 대확산 방지를 위해 불요불급한 외출, 모임, 행사, 여행 등은 취소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리며, 가급적 집에 머물고 사람들과 접촉할 때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길 바란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
의성 농우회, 신사참배 거부. 주기철웅천에 가면 "주시철 목사 기념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기철' 이란 인물을 연상하면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성직자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래전에 주기철 영화를 보셨다면 그 곳에 나타난 대부분의 내용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다 끝내 숨을 거둔 장면입니다. 이 당시 대부분 기독교계는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허용하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키고 싸웠으니 그것 자체만으로도 존경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너무 신사참배 거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진정한 주기철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진해 웅천에서 태어나 웅천교회를 어릴 때 다닌 관계로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고향인 진해 웅천에 세워졌습니다. 항간에는 북한에 있는 주기철 목사의 유해를 송환해 고향에 묻어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 주기철 목사 자신이 평양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있었기에 이는 합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을 가보면 대부분 신사참배 거부, 신앙생활 등에 집중되어 있는데, 과연 이것만이 전부일까요? 일제시대 기독교는 독립운동사에서 상당부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계기도 당시 교회들이 연락책이 되었기에,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계몽운동 등의 다양한 교육을 통해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한 곳이 교회였습니다. 신앙생활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때로는 민족주의자, 계몽가 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정주의 오산학교를 졸업하였는 데, 이 당시 조만식, 이승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 후 안질로 인해 시력이 약화돼 고향인 웅천에 내려왔고,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웅천 20인 지도부의 일원이었으니, 일제의 지명수배를 받게 되어 피하였지만 결국, 체포되었는 데, 이것이 1차로 투옥된 시기입니다. 이후 주기철은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부산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1931-1936)를 거쳐 평양 산정현 교회(1936-1944)를 시무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기가 바로 평양 산정현 교회의 시기입니다. 주기철 목사가 2차로 투옥된 계기가 된 사건은 바로 의성 농우회 사건입니다. 농우회는 유재기 목사가 주도적인 인물로 '예수촌' 건설을 농촌 운동의 목표로 삼고 협동조합 운동을 실천하여 자립하는 농촌 공동체를 일구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농우회는 당시 장로교 총회에서 농촌부를 폐지하여 농우회의 와해를 꾀했으며, 일제도 유재기를 비롯하여 박학전, 송영길 등과 함께 주기철 목사도 검거하였습니다. 농우회 사건은 일제가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도모한다고 의심하여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며, 주기철 목사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것만으로 보아 그의 사상적 특징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일제는 1935년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기독교계의 반발을 샀으나, 탄압이 지속되면서 천주교는 1936년에 감리교와 장로교는 1938년에 국민의례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주기철 목사는 이에 저항하여, 1938년 이후 네차례에 걸쳐 5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모진 고문등으로 말미암아 1944년 4월 20일 4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주기철 목사는 1939년 7월 의성 농우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940년 2월 석방되어 평양으로 돌아온뒤, 산정현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게됩니다. '다섯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설교로 그의 심정을 고스한히 담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한 지 이틀 후에 일제에 검거되고, 장로회로부터 목사직을 파면당했습니다. 한마디로 주기철 목사는 일제 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켜주어야 할 예수교 장로회로부터도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의성 농우회의 협동조합운동 문제와 남들처럼 적당히 국민의례로 타협하면 되는 데, 그것을 주기철 목사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국민의례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요. 만약 국가가 불의의 세력이라면 거기에 충성을 다한다고 맹세해도 되는 것인가요. 이 문제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에 어렸을 때 부터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 등을 많이 해 오며 살아왔습니다. 이적은 정당화할 수 있는 지 의문입니다. 충성을 맹세하는 식이 국민의례가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일제시대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보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회운동과 계몽운동의 바탕이 되었기에, 그 영향력은 상당하였습니다. 왜 일제가 주기철 목사에 집착하였을까? 그것은 그 파급력 때문일 것입니다. 불의에는 절대 굽힐 수 없다는 신념,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생활에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민족을 사랑한 독립운동가, 예수촌 건설이라는 공동체의 농촌 건설을 꿈꿔왔던 사회운동가, 불의한 셰력에게는 국민의례라는 형식조차도 거부하여 끝까지 신앙적 양심을 지킨 순교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기철 목사의 마지막 설교인 '다섯종목의 나의 기도'를 보면서 당시 복잡한 심정을 느껴봅니다. 주기철 목사의 다섯종목의 나의 기도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나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바로 지금 죽음 앞에 대면하고 있기에 두려움밖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고 죽음을 모면하여 주님을 저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두 번째 나의 기도는 이 장기간의 고통을 이기게 하옵소서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고문이라도 한두번에 끝난다면 견딜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되는 고통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나 같은 약졸이야 주님이 도와주시기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내 늙은 어머니와 내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인정의 줄이 얽매이지 않고 기도합니다 네 번째 나의 기도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사람이 나라의 신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부부가 있어서는 정절의 있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향한 순결의 의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 나의 마지막 기도는 내 영혼을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옥중에서는 사형장에서는 이 목숨을 끊어질 때 주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자은동 변전소, 옥내화 서둘러야선거철만 되면 자은동 변전소를 옥내화한다는 공약은 여야할 것 없이 제시되어 왔다. 후보자들마다 자은동 변전소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변전소 위편의 자은3지구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은3지구의 유권자들도 이러한 것을 알기에 선거철에는 유난히 변전소 이전에 관한 여론을 상기시키고 아파트 단지마다 변전소 이전이란 구호의 현수막을 도배하다시피한다. 자은동 변전소는 1983년에 건설된 것으로 올해 37년째된 노후된 옥외변전소이다. 당시 변전소가 설립될 때에는 주택도 많지 않아 한전에서는 크게 보상비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아파트 입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문제제기 된 곳이다. 일각에서는 변전소가 위치해 있기에 나름대로 저렴한 가격에 입주했는 데, 입주민들이 변전소 옥내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파트 값을 올리기 위한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주민들이 크게 문제삼는 것은 변전소의 전자파 피해와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전소 전자파로 인한 피해는 검증이 되지 않았고, 환경단체에서도 가전제품의 전자파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닌 데, 전자파로 인한 건강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파트와 변전소는 일정정도 이상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한밤중에는 변전소에서 ‘윙’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 소리도 아파트에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변전소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연립주택은 다소 들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전자파 문제보다는 오히려 도시미관상 상당히 좋지 않은 부분이 좀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빔, 변압기, 앵글 등이 도시에 완전히 노출되니 낮에도 보기가 안 좋고, 밤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오래된 것이다보니 더욱 보기에 안 좋은 것이다. 또한 안민2터널의 출구가 자은동 변전소 위에 있다보니 진해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변전소의 미관은 도시 이미지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전에서도 오래되다보니 고장이 잦아 새로운 시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변전소를 단장해야 하는 데, 이제는 옥외변전소로 하기는 어렵고 옥내로 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변전소를 옥내화하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비용문제이다. 약 20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옥내화비용을 한전이 지불하기에는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이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를 일정부분 매각하여 충당할려고 한다. 현재 자연녹지로 된 변전소 부지가 2만 5237㎡인데, 지하1층 지상3층으로 옥내화하면 1만 3737㎡가 소요되어 1만 1500㎡의 부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잔여부지를 자연녹지에서 일반주거자역으로 용도변경해 주면 매각비용으로 옥내화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된다면 ㎡당 300만원 이상으로 추정되기에 400억원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금액으로 옥내화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칫 특혜를 우려해 한전이 먼저 사업을 시행하면 차후에 잔여부지에 대한 용도변경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에서는 주민과 지자체의 잔여부지에 대한 과도한 공유권 주장에 대한 우려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공유부지로 인해 한전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결국 잔여부지에 대한 공유권 문제를 누가 유리하게 끌고 나가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한전에서는 공유권을 지자체에 적게 줄려고 할 것이고, 지자체에서는 보다 많이 확보할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의 과도한 줄다리기가 지속될 경우 오히려 피해는 주민들의 몫이 된다. 하루속히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양측이 지혜롭게 풀어 나가기를 지역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
창원시, ‘충무지구 도시재생사업’ 지역 문화예술에서 답 찾다창원시(시장 허성무)는 26일 진해 충무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추진 중인 진해역을 방문하여 현장을 점검했다. 이날 허성무 창원시장은 충무지구 주민협의회 배숙자 위원장, 진해문화원 홍성철 원장, 진해예총 강수찬 회장 등 관계자를 만나 의견수렴 및 사업현장을 둘러봤다.충무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충무동, 중앙동, 여좌동 일원 23만㎡에 5년간 250억원을 투입하는 중심 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다. 쇠퇴한 진해원도심의 활력증진 기반 마련하고 근대문화 자산의 가치를 활용한 문화관광 브랜드 구축 및 주거환경 공간관리를 위한 지역공동체 활동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마중물 사업이다. 진해문화원과 복합건립은 문화·생활·관광 혁신거점 공간으로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진해문화플랫폼1926 조성사업’은 충무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3대 핵심 단위사업으로 진해구 진해역 광장 일원 10,741㎡에 진해역 복원 및 광장 조성, 관광안내센터와 하나로이음센터, 진해문화발전소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뉴딜사업비 250억원에 진해문화원 건립비용 47억원을 추가 투입하여 전체 연면적 3,200㎡ 규모로 계획 중이다. 시는 올해 하반기 공공건축 현상설계공모해 2021년 하반기 착공해 2023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진해문화플랫폼1926의 문화발전소 소공연장과 진해문화원 대강당 등의 중복시설 통·폐합 및 업그레이드로 건물 퀼리티를 향상하고, 다양하고 품격있는 문화공연장 건립으로 지역주민이 품격있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창원형 융복합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가 될 것이다.진해문화원은 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2층에 위치하여 이용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교육실 부족과 역사기록보존을 위한 서고가 없어 이전을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고, 드디어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허성무 시장은 “이야기가 있는 열린 광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그램과 진해문화원의 전통문화프로그램의 유기적 결합은 상시 다양한 연령층의 집객 효과로 충무지구 상권 활성화와 외부 관광객 유입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원도심의 역사문화자산과 다양한 지역문화 콘텐츠로 매력적인 문화관광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왜군 종군신부 세스페데스를 기념해야 하나진해 웅천에 가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쪽에는 왜군의 종군 신부에 불과한 세스페데스를기념하여 창원시가 시민의 세금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였던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서양선교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도였던 왜장 고니시유키나가의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로서 조선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왜군을 상대한 신부입니다. 한마디로 전시 왜군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종군신부입니다. 이는 조선의 관점에서 왜군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임화가 '신문학사'에서 세스페데스는 '서구의 사정과 천주교의를 전했다고는 하나 이렇다할 흔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조선을 위한 세스페데스의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스페데스가 고니시에게 보낸 편지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 날 저를 방문해 성 안에서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편지들을 전했습니다. 그는 편지를 읽고 나서 제가 조선에 도착한 사실에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대화를 나눴습니다. 또한 여러 성으로부터 많은 일본군 이교도가 자기를 방문하고자 이곳에 자주 출입하기 때문에 자기 동맹자들의 저택과 거처가 있는 이곳 성의 낮은 곳에 제가 머무르는 것이 그리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비센테 베에몬과 함께 성의 높은 곳에 머무르면서 가톨릭교도들이 그곳으로 저를 방문하게 하고 고해하도록 했습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임진란의 기록』 이 편지의 뜻대로 세스페데스는 비센테 베에몬과 같은 높은성, 바로 웅천왜성에 머물렀습니다. 일본군 이교도들의 방문을 위해 웅천왜성에 거주하였는데, 과연 조선인들을 만나 선교활동을 했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스페데스의 편지가운데 조선에 관한 언급은 그리 없으며, 있다고 한들 조선은 매우 춥다거나 일분의 카톨릭교도들이 굶주림, 질병 등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단지 조선인에 관한 것은 포로로 끌려온 조선 병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내용인데, 이를 과대해석해서 마치 조선을 위해 공헌한 신부로 칭송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스페데스가 1년 6개월동안 조선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웅천왜성을 봉쇄했던 시기이기에 조선인을 만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스페데스의 편지를 수록한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의 '일본사'에도 이순신을 “조선 국왕과 가까운 친척 사이이며 해안 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장수”로 소개하거나 조선과 중국의 국경에는 넓은 모래사막이 있다는 부정확한 내용이 많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은 “항복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조선군은 “해적”과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즉, 세스페데스의 편지를 담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못한 데,세스페데스가 조선을 위해 왔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과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수 있었던 배경에 외국 선교사의 지원이 상당부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큐슈의 영주 및 사무라이에게 서양식 화승총을 전달한 이도 스페인 예수회 소속 프란시스 사비에르 선교사였습니다. 영주와 사무라이들에게 손쉽게 전투에 승리하게 해주고, 인심을 얻어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큐슈지방의 영주인 고니시 유키나가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스페인 선교사들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대면하게 하였다는 것 자체가 도요토미에게유리한 지형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때 고니시는 선봉대였던 1군단의 수장이었고, 부산 동래 상륙시에는 군선에 둥근원형의 십자가 마크를 새긴 군기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대원 전원이 카톨릭 세례를 받은 신자들로 구성되었고, 그 뒤에 세스페데스 일행의 종군신부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즉, 세스페데스가 임진왜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진해지역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기념비 등이 많으며, 안골포 해전으로 왜군을 격퇴한 사실도 있습니다. 또한 세스페데스 공원 맞은 편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스페데스 공원이 웅천에 있는 것은 선조들의 노고를 비웃는 처사가 아닐까요?
-
출근 안해도 지불하는 대리기사 비용코로나19 대응 2단계는 대리시장도 꽁꽁 얼어붙기 하고 있습니다. 하루 3-4콜 수행밖에 못한다고 하면서 대리기사들은 푸념섞인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매일 들어가는 고정비용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고정비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리기사들은 휴대폰에 대리프로그램을 설치합니다. 경남에는 콜마너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남대리운전연합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연합체는 콜마너와 콜마트라는 프로그램도 함께 사용합니다. 이 연합체는 말만 연합체일뿐 실체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등록된 단체가 아니기에 공정위에 신고해도 실체를 파악할 수 없기에 어찌할 수 없다는 답변만 올 뿐입니다. 경남대리운전연합에는 콜센터가 10개 내외정도 있습니다. 우리가 대리를 시킬 때 전화를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전화번호만 있는 대리업체가 많게는 100개정도 된다고 할 것입니다. 전화번호도 있고 사무실도 있는 업체가 콜센터를 하며, 그 밑에 전화번호만 있는 대리업체들이 있는 겪입니다. 우리가 전화번호만 있는 업체에 대리를 시키면 대리기사가 지불하는 수수료가 3,600원이라면 1,000-1,300원 정도는 콜센터에 가고 나머지 2,000-2,300원정도는 전화번호만 있는 사장에게 가는 구조입니다. 이렇다보니 콜샌터를 가진 업체는 자사 콜 수입과 타사 콜 수수료를 합한 이익을 가져가는 다소 다단계식 구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로지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남로지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리기사들에게는 출근을 안해도 빠져나가는 비용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그램 사용료와 합류차비용입니다. 프로그램 사용료는 1개의 프로그램당 500원씩 차감됩니다. 30일 기준으로 월 15,000원이 빠져나가고, 출근을 안해도 지출되는 비용입니다. 콜마너 프로그램 2개와 콜마트 프로그램을 합하여 3개정도 사용한다고 하면 하루에 1,500원 정도 지출되고 여기에 로지프로그램까지 사용하면 2,000원이며, 카카오 프로서비스까지 사용한다면 2,700-2,800원 정도 지출되는 것입니다. 한달이면 85,000원 정도가 프로그램 사용료로 지출이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합류차 비용이 있는 데, 이것도 출근을 하든 안하든 무조건 빠져나가는 비용입니다. 경남대리운전엽합은 하루 3,500원, 경남로지연합은 900원입니다. 아무래도 경남대리운전연합의 합류차가 훨씬 많습니다. 한달이면 105,000원, 27,000원이고 2개의 프로그램을 다 사용하면 합류차 비용만 월 132,000원이 되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대리기사들은 출근을 안해도 합류차비용 4,400월 프로그램 비용 2,700원, 총 7,100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콜을 장아주는 프로그램비용 1,000원에 보험료까지 합치면 11,000-12,000원이 빠져나간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소 16,000원 정도의 1콜을 수행해야 수수료를 제외하고 하루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업체의 입장에서는 요즘처럼 콜이 적으면 수수료 수입이 적어질 것이지만, 프로그램 사용료 및 합류차 비용에서 얻는 이득은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리기사가 많아야 업체의 입장에서는 불황이더라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줄어들지 않는 셈입니다. 이 문제가 그동안 수년동안 대리기사 단체에서 문저점으로 지적하였고, 공정위에서도 업체의 이러한 수입구조를 알고 있으며, 그 규모도 상당합니다. 특히 업체에서 합류차 비용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어도 이를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리기사들이 이용하는 합류차를 업체에서 운영할 게 아니라 공영서비스로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등록된 기사들이 합류차를 이용하게 한다면 대리기사의 현황도 지자체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며, 대리기사들의 고정지출비용도 줄어들 것입니다. 프로그램 사용료를 줄여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로지나 콜마너, 콜마트의 콜을 모두 공유하면 1개의 프로그램으로도 모든 콜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콜마너를 보면 업체에서 일부러 2개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늘리기 위한 것으로 대리기사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로잡아야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리기사들에게 그나마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관계기관이 보다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