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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소리보존회, 코로나19 종식 기원‘희망의 서울 소리’개최(사) 서울소리보존회(이사장 남혜숙 명창) 는 오는 10월 27일(수)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소재 ‘민속극장 풍류’에서 국악 콘서트 “은평 누리에 울리는 희망의 서울 소리“를 선사한다. 2021년 은평구 지역 문화예술단체 지원사업 일환으로 열리는 이 공연에서는 전설적인 대명창으로 평가받는 김옥심, 이진홍 두 여류 명창의 서울 잡가를 50년간 은평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하고 있는 남혜숙 명창이 주축이 되어 서울의 대표적 공연 예술물인 잡가, 대감놀이, 재담 소리, 비나리 등을 선보인다. 공연은 비나리와 회심곡, 탑돌이로 막을 연다. 최근 전국 민요경창대회에서 명창부 대상(국회의장상)을 수상한 서울시 무형문화재 송서율창 이수자 유근순을 비롯한, 서도놀량사거리 이수자 이춘자, 김옥자, 그리고 국가 문화재 경기민요 전수자 김영애, 한선순 등이 기량을 뽐낸다. 이어 서울소리보존회의 트레이드 마크인 다듬이 시스터즈 예술단이 다듬이 타악으로 대표적인 서울 잡가인 ‘달거리’와 ‘진천 방촌 아리랑’, ‘영천 아리랑’을 선보인다. 은평구와 고양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다듬이 예술단을 이끄는 원로 예술인 최영자를 비롯한, 김태점 부단장, 서도놀량 사거리 이수자 송영옥, 국가 문화재 경기민요 전수자 정선훈, 그리고 원로 예술인 이순자 등이 수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별히 서울시 무형문화재 시조 이수자 홍순옥과 위옥금이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는 서도재담소리 ‘코로나 박멸가’를 소개한다. ‘코로나 박멸가’는 서울소리보존회가 코로나19 극복을 주제로 지난해 은평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평양검무 이수자 최정희, 윤현숙 두 명무가 활달하고 기개 있는 춤 솜씨로 무대를 휘어잡고, 이어 이날 공연의 백미를 장식할 대감놀이 무대가 펼쳐진다. 서도놀량 사거리 이수자이자 경기민요 전수자 박우연(구명 박다교)과 원혜옥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김옥심 명창의 수제자 유명순 명창이 직접 제금을 연주하며 창부타령을 불러 대감놀이의 멋을 한껏 발산한다. 남혜숙 명창이 서울잡잡가 ‘변강수타령’을 부르고, 제자 원영신, 김경초와 함께 ‘뱃노래’를 열창하며 막을 내린다. 악사 역시 국악 기악계의 중견 예술인들이 대거 출연한다. 장구 김민서 명인을 비롯한, 대금의 김종환 명인, 해금의 원나경 명인, 피리의 연홍관 명인 등이 공연의 힘과 흥을 보탠다. 연출을 맡은 유옥영 감독은 “은평은 예부터 전통예술이 발달한 곳이며, 특히 서울의 대표적인 성악 예술인 서울잡가가 잘 보존되고 있는 지역으로, 경서도 소리 최고의 소리꾼으로 평가받는 김옥심 명창의 서울잡가가 잘 뿌리내리고 있다”며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평 지역민들을 위로하고 코로나19 종식을 바라는 기원과 화합의 성격이 담긴 작품 위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남혜숙 이사장은 “동영상을 통해 이번 공연을 만나게 되는 것이 몹시 아쉽다”며 “하지만 은평 지역이 서울잡가 전승의 본향이므로 이번 공연은 명실상부 서울잡가 전승의 초석을 확실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공연의 의미를 설명했다. 방역 수칙에 따라 일부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공연 실황은 유튜브 무형유산TV를 통해 10월 말 공개된다. 공연 문의 (02)353-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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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서도 명창 박월정이 남긴 판소리 ‘춘향가’ 시연1910~1940년대 활동했던 서도 명창 박월정의 판소리 <춘향가> 시연회가 오는 10월 2일(토) 낮 3시 경서도소리포럼(대표 김문성) 주최로 동대문 창작 마루 광무대홀에서 개최된다. 이번 시연회는 판소리사에 뛰어난 성과를 남기고도 국악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박월정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몽중가’ 등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학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가’ 중 ‘비 맞은 제비같이’ 대목은 정정열제 <춘향가>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이미 1925년 박월정에 의해서도 ‘몽중가’라는 이름으로 음반까지 취입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다른 버전이 있었던 셈이다. 판소리꾼 대부분이 전라도·충청도 등 한강 이남 출신인 반면, 박월정은 한강 이북 출신이다. 1901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9세에 황해도 봉산 사리원에서 서도소리·판소리·탈춤 등을 배운 후 13세에 상경해 소리꾼으로 활동한다. 1933년 음반사상 최초의 창작 판소리로 평가받는 정정렬의 ‘숙영낭자전’보다 앞서 창작 판소리 ‘단종애곡’과 ‘항우와 우희’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악계에서 서도 명창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판소리사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박월정의 <춘향가> 시연회는 색다르다. 이번 시연회는 2020년 복원 및 재현 사업으로 선정된 ‘박월정의 판소리’ 복원을 바탕으로 판소리 명창과 경서도 명창들이 함께하여 <춘향가> 중 음원이 발견된 ‘기생점고’, ‘몽중가’(1925), ‘어사남원입’, ‘암행어사 출도’ 대목(1933) 등을 소개한다. 박월정 명창이 서도소리와 판소리에 두루 능통한 소리꾼이었다는 점에 착안, 판소리 전공 실기인과 서도소리·경기소리 전공 실기인이 함께 <춘향가>를 시연함으로써 두 분야를 한 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판소리 전공 실기자 김수미 명창과 경기소리 전공 최지안 명창은 박월정의 <춘향가> 중 이별 장면인 ‘몽중가’ 대목을, 판소리 전공 이효덕 명창과 서도소리 전공 이나라 명창은 ‘암행어사출도’ 대목을 비교하여 부른다. 또한 김수미 명창은 ‘어사남원입’대목을, 이효덕 명창은 ‘기생점고’ 대목을 부른다. 고수는 2000년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조용복 명고수와, 구례 송만갑 고수대회 대상 수상자 김민서 명고수가 나선다. 시연에 앞서 박월정의 판소리 <춘향가>의 특징과 의미를 유옥영 책임연구원과 김인숙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강의 형태로 소개하며, 시연 후에는 시연자 및 온라인 줌에 접속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된다. 유옥영 연구원은 박월정의 판소리에 대해 “일반적으로 한 장르에 오롯이 평생을 거는 다른 명창들과 달리, 이번 시연회를 통해 다중 장르적 관심사에 청춘을 불사른 박월정의 예술혼이 시공을 넘어 판소리 창자와 민요 창자들의 목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며 “이번 시연회의 중요성은 서도 지역에서 불린 판소리의 면모를 처음 드러낸 귀중한 자료를 토대로 사라진 소리를 찾아내어 나머지를 맞추어야 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시연회는 코로나 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관람 인원이 제한됨에 따라 이메일(echoyounjung@hanmail.net) 사전 예약자만 선착순 입장이 허용되며, 온라인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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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님의 침묵 전국백일장’ 비대면 작품 공모제10회 ‘님의 침묵 전국백일장’이 코로나 19 재유행으로 인해 비대면 작품 공모 방식으로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과 문학 정신을 선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국민의 문학적 감수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고취하여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개최된다. 백일장은 운문부(시, 시조)와 산문부(수필)로 진행되는데 미등단자이면 나이·성별·지역 제한 없이 전 국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는 무료이다. 인제 신문(www.okinjenews.co.kr)이나 인제군청 누리집(www.inje.go.kr/portal)내 ‘공지사항’에서「작품공모 참가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응모 작품과 함께 오는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메일(injenews@hanmail.net)로 제출하면 된다. 응모작은 ‘희망’ 또는 ‘극복’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아래아 한글로 작성하면 되고 작품 분량에는 제한이 없다. 1인 2편 이내 제출할 수 있다. 응모작은 지금까지 미발표된 작품이어야 하며, 추후 표절 등의 문제가 있을 시 입상을 취소하고 상금을 전액 환수한다. 시상 내역을 보면 부문별로 △장원 2명 강원도지사상과 상금 150만 원 △특별상 2명 광복회장상과 상금 100만 원 △차상 2명 인제군수상과 상금 80만 원 △차하 2명 인제군의회 의장상과 상금 70만 원 △장려 6명 인제 신문 사장상과 상금 10만 원이다. 수상작은 오는 9월 10일 오후 3시 이후 인제 신문 홈페이지와 인제군청 홈페이지(‘공지사항’)를 통해 발표하고 수상자에게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인제신문사 김좌훈 대표는 “8·15광복을 맞아 만해 선생의 삶을 되짚어보고 항일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백일장을 개최한다”며 “많은 국민들이 참가하여 만해 사상을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강원도・인제군・만해사상실천선양회・동국대학교・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인제신문사가 주관한다. ☎ 문의 : 033-461-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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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웅동을 동북아평화공원으로 조성해야(사진: 순천시청) 지난해 전남 순천의 김영득 민주당 예비후보는 동북아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김영득 에비후보가 경선에서 탈락은 했지만, 이 공약은 지금 순천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순천에서는 도의원들도 합세하여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들로 말미암아 2025년까지 전남 순천시에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순천에는 순천왜성과 검단산성이 있습니다. 순천왜성은 고니시유키나가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쌓은 왜성입니다. 이에 반해 검단산성은 조명연합군이 왜군을 격퇴한 산성이라고 합니다. 순천시에서는 이 두가지의 스토리를 갖고 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어떨까요? 순천보다 오히려 진해가 평화공원을 만드는 데에는 최적지임에도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논의나 토론이 전무했습니다. 진해에는 웅천읍성과 웅천왜성, 안골왜성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흔적이 별로 없지만 명동왜성과 자마왜성이 있던 곳이고, 조선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제포왜관도 있던 곳입니다. 지금 그 자리에 진해신항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무역항과 읍성, 왜성들이 있으니 순천보다는 진해가 동북아의 평화공원이 들이설 최적의 입지라 할 수 있습니다. 왜 평화공원이어야 할까요? 침략의 역사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알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길을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실 진해의 왜성들은 그동안 외면당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반일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으로 왜성에 대한 가치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왜성이지만 이 왜성을 쌓는 데, 가장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람들은 바로 조선 민중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의 전리품이 아닌 조선 민중의 한이 서린 곳이기에 바로 우리의 문화재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왜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낱 쓰러져 가는 큰 바위성정도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단체에서 왜성들을 견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왜성을 견학하면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사라져 더 이상 민중들의 피눈물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침략의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역사가 있음에도 그동안 진해주민들은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실 외부인들이 보는 진해의 이미지에는 해군도시도 있지만, 일제의 잔재도시라는 이미지도 남아 있습니다. 벚꽃, 구도심의 일제건물들 때문입니다. 점차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평화’라는 상징성을 띤 도시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평화라는 상징성을 가진 도시로서 관광상품화 할 때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 명나라, 왜국의 전쟁터였던 진해 동부권에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전쟁영웅의 흔적으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민중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전남 순천에는 성벽복원, 명나라, 조선, 왜국 장수들의 동상들도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많은 계층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이름없는 민중들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침략으로 인한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가르칠 수 있는 평화공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순천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고, 역사를 아래로부터 살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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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진해 경화역에 인문학 입혀 사계절 관광명소로 키운다창원시(시장 허성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생태녹색관광(노후관광시설 재생) 육성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돼 총사업비 2억8000만 원을 확보했다고 27일 밝혔다.생태녹색관광(노후관광시설 재생) 육성사업은 관광자원으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나, 물리적으로 낡고 기능적으로 쇠퇴한 기존 관광시설에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입혀 관광기능을 재생시키는 사업이다.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공모에서 창원시는 ‘진해 경화역(폐역)에 내린 별빛 생태인문학 향연’ 사업을 신청해 선정위원회의 심사‧평가를 거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진해 경화역(폐역)에 내린 별빛 생태인문학 향연’ 사업은 △경화역에 별빛 야간경관 조명 설치 △생태인문학 명사 동행투어 △별빛 야간걷기행사 △브이로그 콘테스트(경화역에 별빛이 내린다) 등으로 꾸며진다.지난 2006년 폐역이 된 진해 경화역은 여좌천과 내수면 환경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벚꽃 생태관광벨트의 중심에 자리한다.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기간은 물론 철길 따라 상춘객의 가벼운 발걸음이 이어지는 전국적인 벚꽃 관광명소로 유명하다.심재욱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경화역 철길 따라 이어진 숨은 골목이야기를 생태인문학적 특성과 가치를 살린 관광콘텐츠로 육성해나가고, 경화역 별빛 야간경관 조성으로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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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중원광장 일대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공모’최종 대상지로 선정창원시(시장 허성무)는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 3차례에 걸친 평가를 거쳐 진해구 중원광장 일대가 최종 사업대상지로 선정됐다고 21일 밝혔다.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은 시간의 흔적과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상징공간을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핵심 축으로 조성하고, 근현대 역사문화자원의 적극적 보존과 활용으로 지역재생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공모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올해에는 경남 창원시를 포함한 총 9개소 지자체에서 공모신청을 했으며, 1차 서면 심사와 2차 현지조사, 3차 종합평가를 통해 최종 2개소가 선정됐다.「진해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진해 대천동 ~ 창선동 일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계획도시인 진해의 당시 도시 평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구도심의 근대 도시 경관과 건축 유산이 집중적으로 보존되어 있어, 보존·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시는 지난 3월부터 지역 주민에게 사업 설명과 서명운동, 소유자 동의를 받아내는 등 10개월간 전방위적인 노력을 한 결과, 현장 조사와 평가를 거쳐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공모사업의 최종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향후, 종합평가 의견을 반영하여 문화재 위원회 심의와 문화재 등록을 위한 현지조사 등일련의 절차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로 고시됨으로써 2021년 11월에 최종 선정된다.이 사업을 통해 2022년부터 5년간 최대 사업비 500억원을 지원받아 학술조사연구, 역사문화공간 내 토지 매입, 등록문화재의 보수․복원, 역사경관 회복 등의 보존기반 조성사업과 교육․전시․체험공간 조성과 운영 콘텐츠 개발, 편의시설 확충사업 등의 활용기반 조성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허성무 창원시장은 “지역 주민과 문화가 상생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시브랜드 창출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특히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기쁜 소식이 시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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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근대역사문화공간 재활성화 사업, 1차서면심사 통과창원시가 문화재청의 2020년 ‘근대역사문화공간 재활성화 사업’의 공모에 참여하여 지난 23일 서면평가를 통과하여 1차로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진해 구도심 전경 사진: 창원시) 창원시가 밝힌바에 의하면 ‘진해근대문화역사공간’은 대천동에서 창선동의 일원으로 일제강점기 시대 도시평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비록 일제강점기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계획도시이다. 이렇게 일본강점기부터 해방이후 구도심권은 근대도시 경관과 건축유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보존활용가치가 높다고 하였다. 올해에는 전국 8개 지차체에서 공모신청을 했으며, 지난 20일 문화재청 서면심사를 통해 진해를 포함하여 4개소가 선정되었다. 향후 11-12월 중 사업대상자에 대한 문화재청의 현장 실사가 예정되어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별평가 후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데, 최종 선정은 2021년 11월이다. 따라서 최종선정이 될 수 있도록 창원시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공모사업 최종 선정으로 침체된 진해 구도심이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교육 및 관광자원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업에 최종 선정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진해가 최종선정된다면 창원시에서는 5년간 최대 500억 규모의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문화재 재생을 통해서 진해경제가 활성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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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요지전시관,“다시 보는 웅천읍성”개최창원시 웅천도요지전시관에서는 10월 20일부터 12월 20일까지 <다시 보는 웅천읍성> 전이 개최 되었다. 이번 전시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웅천읍성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위치한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16년(1434년)에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제포왜관의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연해읍성이다. 읍성은 지방의 주요 거점에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기능이 복합되어 축조된 성곽으로 웅천읍성은 읍성의 축조 목적인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 기능을 가장 적절하게 수행한 성곽에 해당된다. 특히 웅천읍성은 조선 전기에 개항한 삼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제포왜관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출토유물은 분청사기편, 백자편, 옹기편과 와편, 동물뼈, 목제, 석탄 등이 출토되었다. 분청사기는 주로 대접, 접시, 병의 저부편 삼족기 다리편들이고 백자는 대접, 종지, 접시의 주부편들이다. 옹기는 대부분 동이와 병의 구연부편이고 기와는 선조문과, 집선문, 창해파문 등이 시문된 편들이다. 웅천읍성은 1434년 세종 16년에 축조된 이래 문종과 단종에 이르기 까지 수차례의 개축이 이루어지고 근래에는 개발로 인하여 유적 및 유물이 훼손되어 아쉬움을 준다. 전시 관람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인원을 제한하여 소수로 진행하며, 전시관내·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및 손 소독제 사용, 거리두기 준수, 시설 및 기구 소독 등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황규종 문화체육관광 국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웅천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번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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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왜성인지, 잡초 풀밭의 안골초원인지이 곳이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많은지 의아했다. 온갖 잡초로된 풀밭이다보니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안골왜성이 아니라 안골초원이라 불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안골왜성은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안골로 들어가는 위해 푸르지오 아파트 앞에서 좌회전하여 터널을 통과하면 안골왜성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정표도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기에 지나치기가 아주 쉽다. 안골왜성에 들어가도 주차장 시설이 엉망이다. 그저 약간의 잔여부지에 그치지 않고, 땅도 푹푹 패여 있어서 주차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입구는 목재계단으로 설치했지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목재계단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목재계단을 따라 3-5분 정도 올라가면 안골왜성이 나온다. 안골왜성이 어떤 곳인가? 이 곳에는 원래 세조8년 (1462년) 김해 가망산에 있던 만호진이 주둔학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함락되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웅천왜성을 쌓았고,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등은 해발 100미터의 동망산 꼭대기 안골왜성을 쌓았다. 이들이 안골왜성을 쌓은 이유는 해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일본으로부터 보급문제가 발생하여 조선수군을 막기 위한ᅟ수군 기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지리적으로 보면 웅동만을 사이에 두고 웅천왜성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신항건설로 인해 없어졌지만, 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가덕수로를 지키는 데 최적지였다. 안골왜성은 일제강점기 때 고적 ‘웅천안골리성’으로 관리하였을 정도로 일본도 애착을 갖고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웅천왜성과 마찬가지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안골에는 조선 수군기지인 안골포진성이 있었다. 왜군은 이 성벽 돌을 안골왜성을 쌓는데, 사용하였고, 안골포진성 서쪽 성벽일부는 안골왜성의 성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안골왜성 성내의 전체면적은 약 5,000평(16,500㎡)로 상당히 넓다. 성의 둘레는 594m, 성벽의 높이는 4∼7m 정도이다. 안골왜성에 가면 알 수 있듯이 3등분 된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을 평평하게 깎은 뒤 혼마루를 이루고, 비탈을 깎아내면서 니노마루, 산노마루로 나누어서 따로 돌로 쌓았다. 이 성곽을 축조하는 데에는 약 5만명이 동원되었고,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어 바닷길을 운용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성의 출입은 육지 쪽을 막고 바닷길을 이용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이르도록 해자를 파서 교통로로 이용하였는데, 해안으로 드나들기 위한 통로가 만들어진 것도 왜성이 가지는 특징이다. 웅천왜성과 안골왜성을 가보면 바다의 경관이 장관인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신항만 건설로 인해 상당부분 미관을 해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좋은 경관을 갖고 있다. 만약 이 곳을 민간이 소유하고 있다면 이대로 방치할 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게 하곤 한다. 상당한 상품성이 있음에도 보존을 중시해서 방치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너무도 심하게 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가 너무 무성하다보니 지금 안골왜성에 와도 제대로 둘러보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풀을 깍인 곳인 곳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의 성들로 가 보긴 하였다. 잡초를 누군가가 깍아서 그래도 관에서 나름대로 인도를 만들었나 생각했는 데, 그 생각도 착각이었다. 잡초가 깍인 인도는 안골왜성 안의 무덤을 벌초하기 위해 온 사람이 통행로를 만들기 위해 깍은 것이다. 한마디로 관에서는 전혀 잡초를 건드린 적도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좋은 곳을 그냥 풀밭으로 방치해야 하는 지 곰곰이 생각해야 볼 것이다. 옛 것을 보존하고, 복원할 것은 복원하면서 역사와 자연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출할 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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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읍성의 해자조교 태풍으로 인해 무너지다.가끔 진해의 명칭을 웅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진해라는 명칭은 일본강점기에 생긴 명칭이고, 현재의 진해지역도 이 때 생긴 신도시이다. 그러기에 조선시대까지는 명실상부하게 웅천이 진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웅천읍성’이라는 명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읍성은 지방군현에 읍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이다.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21년 (1439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일본과의 무역을 하던 곳이기에 일본인의 불법거주가 많아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 이 당시 제포왜관이 있었는 데, 이렇듯 왜구와 왜인이 진해에 연관성이 많은 이유는 부산-진해-마산-거제 일대와 일본 규슈 북부지역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이었디.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도 쓰시마·이키 등 사이에 있는 섬을 징검다리 삼아 보름이면 건너갈 수 있었다. 진해는 한·일 교류의 요충지 구실을 했지만, 동시에 왜구의 노략질에 숱한 피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진해는 일찌감치 한·일 교역의 중심지이자 군항으로 발달했다. 하지만 중종5년(1510) 삼포왜란 때에는 왜인에 의해 일시함락되어, 동문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리고 임진왜한 때에는 왜군에게 함락되 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성과 마찬가지로 웅천읍성에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 도랑, 폭 4미터의 ‘해자“가 있다. 이 ’해자‘에는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닥에 박아놓은 나무말뚝(목익)과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나무다리(도개교)도 잇었다는 사실이 2001년부터 2008년 사이의 네차례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해자를 건너기 위해 만든 해자조교가 지난 7일의 태풍으로 무너졌다. 하루 속히 복구해야 할 것이다. (아래사진) 보통 성에는 치와 문루, 옹성시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웅천읍성도 이와 같은 형태이다. 옹성은 성문앞의 성벽이 항아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웅천읍성 뿐 아니라 왜성도 다소 비슷한 형태이다. 이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옹성형태로 만들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성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적을 공격하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입구는 좁고 성문 앞에는 조금 둥글고 넓게 만들어 적이 갇히는 형태이다. 웅천읍성에는 명문석이 있다. 바로 공사 책임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동벽과 남벽에 모두 5개의 명문석이 확인되었는데, 진주, 창녕, 청도, 합천의 5개소이며 경상도 전역의 백성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 맨 아래 바위에 한자로 적힌 것을 알 수 있다) 웅천읍성은 동서남북의 4개의 대문이 있었다. 현재 복원된 것은 동문인 견룡문과 주변성벽이며 경남도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