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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냉천사거리,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천막농성 및 천만인 서명운동 시작1. 진해 냉천사거리,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천막농성 및 천만인 서명운동 시작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1월 8일 기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7%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는 김건희 윤석열을 규탄하고 김건희 특검을 요구하는 천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진해 구민의 뜻을 모으고자 합니다. 진해지역위원회는 진해 구민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특검을 촉구하는 자리에 자원봉사 할 분을 초대합니다. 자원봉사나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카카오톡이나 문자 보내주세요. 장소: 냉천사거리 (석동 공영주차장 맞은편 베스킨라빈스 앞) 시간: 평일 오전 7시~9시, 낮 12시~13시, 저녁 17시~19시 주말 오전 10시~오후 2시 수능일 (11/14) 오전에는 서명운동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 천막농성 및 서명운동 자원봉사 일정표- 2. 11/16 (토) 서울 집회, 진해지역위원회 참가 (웅천왜성 산행 무기한 연기) 이번 집회는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이 함께하며, 진해지역위원회도 합류하여 힘을 더할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진해 구민의 힘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입니다. 진해 구민 여러분, 함께해 주십시오! 출발: 오전 8시 용원 정우마트 앞 경유: 자은변전소 위 석동터널 입구 노브랜드 앞 회비: 50,000원 계좌: 카카오뱅크 3333-03-2427092 조광호 문의: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 (010-6769-2995)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서울역 대규모 규탄 집회, 진해지역위원회도 참여.. 탄핵 신호탄 될까?1.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 – 진해지역위원회 참여 2. 진해지역위원회 ‘더불어 산’ 2차 산행 안내 1. 민주당, 서울역에서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 개최 – 진해지역위원회 참여 서울발 - 2024년 11월 2일 지난 11월 2일, 서울역에서 민주당 주최로 열린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 범국민대회에는 3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날 집회는 김건희와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개입 의혹과 여러 가지 비리 논란으로 인해 민주당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참여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현재 보수 언론에서도 ‘탄핵’과 ‘하야’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어, 이번 집회가 탄핵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진해지역위원회, 의창구 지역위원회 서울역 집회 참석 진해지역위원회는 김건희에 대한 특검 요구와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며 의창구 지역위원회와 함께 서울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진해 석동터널 입구에서는 16명이, 창원운동장에서는 23명이 탑승해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당원들은 '김건희를 특검하라!'를 외치며 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새롭게 참여하신 당원들과 원로 당원께서 함께해 주셔서 더 의미 있었습니다. 이재명 대표, 2016년 상황을 언급하며 탄핵 암시▶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마지막 연설에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의 일을 언급하며, 3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최악의 정권을 맞이하였고, 이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한편, 이날 집회 이후 ‘두꺼운 패딩을 준비하라’는 말이 소셜 미디어에서 유행처럼 퍼지며, 올겨울에도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해지역위원회도 윤석열 퇴진을 위한 활동에 적극 함께 할 것입니다. 진해지역위원회, 서명운동 및 천막 농성 검토 중 진해지역위원회는 ‘김건희 특검, 윤석열 규탄’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으며, 냉천사거리 근처에서 천막 농성을 검토 중입니다. 농성 일정이 확정되면 추가 공지를 통해 당원과 구민께 알려드리겠습니다. 2. 진해지역위원회 ‘더불어 산’ 2차 산행 안내 진해지역위원회는 당원 간 친목 도모와 소통 강화를 위해 오는 11월 16일 두 번째 산행을 진행합니다. 일정: 2024년 11월 16일 (토) 오후 3시 출발 장소: 웅천왜성 주차장 (웅천교회 옆) 식사: 산행 후, 오후 5시 웅천 ‘진짜배기’ 식당 이번 산행은 지역 당원 간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많이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11월 2일, 김건희 특검 범규탄대회 개최1. 안진걸 초청강연회, 큰 호응 얻어- 10월 26일 2. 민주당, ‘김건희를 특검하라’ 범국민 규탄대회 개최- 11월 2일 3.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 제4차 운영위원회 관련 1. 안진걸 초청강연회, 시민들에게 큰 호응 얻어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위원장 황기철)는 지난 10월 26일 진해종합복지관에서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을 초청해 ‘윤석열 폭정 종식, 시민의 힘으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강연회에는 민주당 진해 지역 및 인근 지역 당원, 시민 등 50여 명이 참석하여, 경제 위기 속에서 꼭 알아야 할 실질적인 경제 정보와 유용한 사이트 등을 소개하여 참석한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안진걸 소장은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고물가,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공공요금 인상, 고부채 등이 국민 생활을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는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민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 방향과 개선 방안을 제시해 청중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시민이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자 이번 강연을 준비했다고 밝히며, 앞으로도 서민 경제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어려운 시기에 흔들리는 민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2. 민주당, ‘김건희를 특검하라’ 범국민 규탄대회 11월 2일 개최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1월 2일 (토) 오후 2시, 서울역에서 ‘김건희를 특검하라’라는 부제로 범국민 규탄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집회는 김건희 특검법을 관철하여 사법 질서를 바로잡고, 국정 농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개최합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는 창원시 의창구지역위원회와 공동으로 참가하며, 상경을 희망하는 시민을 위해 관광버스를 마련했습니다. 버스는 석동터널 사거리 (노브랜드 앞)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창원운동장에서 의창구지역위원회 참가자들과 합류한 후 서울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번 규탄대회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김건희 관련 특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무너진 사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3.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 제4차 운영위원회 개최 민주당 진해지역위원회는 지난 10월 26일 오후 2시, 제4차 운영위원회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회의에는 14명의 운영위원 중 9명(황기철, 강장득, 곽은정, 김민지, 김수미, 이종화, 최숙이, 한지훈, 조광호)이 참석하여 성원 되었습니다. 회의에서는 10월 활동 결과에 대한 보고와 11월과 12월 예정된 행사 계획을 논의하였습니다. 11월 2일 (토) 서울역에서 열리는 ‘김건희를 특검하라’ 범국민 규탄대회에 진해지역위원회가 적극 동참하기로 하였고, 11월 16일 (토) 오후 3시에는 청년위원회 주관으로 ‘웅천왜성 산행’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또한, 연말 행사로 송년회는 12월 13일을 전후하여 여성위원회와 사무국 공동 주관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진해지역위원회는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 당원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왜성의 재발견과 활용방안▶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웅천왜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힢요합니다. 웅천왜성에 대한 동영상을 유뷰브로 만들었습니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왜성을 동북아평화공원으로웅천왜성을 동북아평화공원으로▶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군항, 벚꽃이란 도시 이미지에는 웅천, 웅동이 없다.( 진해구청 홈피에 나타난 진해의 야경사진) 1, 웅천, 웅동이 진해에서 차지하는 위치 2009년 이명박 정부시절 마창진 행정구역통합이 강행될 시기 웅천,웅동에서는 부산과의 통합을 지역주민단체에서 외치고 있었다. 사실상 부산의 생활권인데, 굳이 마창진 통합권역에 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웅천에서 강서까지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관할하기 때문에 통합창원시에 속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행정구역통합은 국회의원 선거구내에서 가능한 것이고, 지방자치제하에서 경남도가 이 지역을 부산에 넘길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주장을 이들 지역주민들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지나칠 사항도 아니다. 그동안 웅천, 웅동지역은 진해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진해의 변방이다보니 여러 가지 소외된 측면이 있었고, 거리상으로도 부산에 인접해 있다보니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역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창원시로 행정구역통합이 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이러한 문제는 오히려 더 가속되고 있다. 소도시의 변방에서 대도시의 변방으로 변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이제 더 이상 창원시의 아니 진해지역의 변방에 머무를 수 없는 곳이다. 부산신항에 이제 진해신항까지 완공되고, 인프라만 확충된다면 창원시에서 가장 미래가 밝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부산신항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꾸준한 인구상승이 지속되었고, 지난 4월 웅동2동은 인구 4만명을 넘었으며, 웅천지역도 1만 3천명에 다가서고 있다. 인구또한 웅천,웅동지역은 거의 6만명에 이르고 있다보니 전체 진해인구의 30%정도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전체 진해구 인구증가의 구심점이 될 지역이다. 현재 진해인구는 그동안 창원의 직장인이 비교적 저렴한 주택을 구입하여 진해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한계점에 이르다보니 지난해부터 인구증가가 멈춘 상태이다. 하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진해지역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더디기는 하지만 기업이 유치되고, 신항이 정착된다면 더욱 인구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진해지역은 일시적으로 진해를 거치는 계층이 주거하는 시스템이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장기거주하는 주민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2, 군항, 벚꽃이란 도시 이미지에는 웅천, 웅동이 없다. 진해라는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해군, 군항, 벚꽃을 말하곤 한다. 진해에 신항이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부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신항이란 명칭 때문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부산을 항만도시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웅천, 웅동은 진해구에 속해 있지만 진해이미지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동력이라고 불리는 웅천,웅동 지역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성장동력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신항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알려진 것이 없어서 웅천이나 웅동에서 소비를 하지 않고, 인근 부산이나 진해지역에 가서 소비를 한다면 단치 거쳐가는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상징하는 대외적인 문화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웅천, 웅동지역은 지금은 진해의 변방이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중심지역이었다. 웅천읍성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으며, 3.1운동도 웅동에서 전개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에도 웅천왜성, 안골왜성을 만들었다는 점, 제포왜관에서 왜인들이 무역을 한 점 등을 비추어보아도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신항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과거와 미래에서 모두 가치가 인정되는 지역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임진왜란 시기에 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받은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침략전쟁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왜국으로부터 수탈을 당한 흔적인 왜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 왜성을 일본이 축조한 것이라 하여 외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와 눈물이 만든 우리 역사의 흔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 민중이 없었다면 왜성 축조는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거의 흔적을 바탕으로 미래에는 신항에서 북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 통일된 한국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 웅천왜성이 위치한 남산에 평화공원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진해의 구도심의 이미지와는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서도 평화공원이 필요하며, 신항의 미래를 보아도 가장 알맞은 이미지인 것이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웅동을 동북아평화공원으로 조성해야(사진: 순천시청) 지난해 전남 순천의 김영득 민주당 예비후보는 동북아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김영득 에비후보가 경선에서 탈락은 했지만, 이 공약은 지금 순천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순천에서는 도의원들도 합세하여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들로 말미암아 2025년까지 전남 순천시에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순천에는 순천왜성과 검단산성이 있습니다. 순천왜성은 고니시유키나가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쌓은 왜성입니다. 이에 반해 검단산성은 조명연합군이 왜군을 격퇴한 산성이라고 합니다. 순천시에서는 이 두가지의 스토리를 갖고 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어떨까요? 순천보다 오히려 진해가 평화공원을 만드는 데에는 최적지임에도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논의나 토론이 전무했습니다. 진해에는 웅천읍성과 웅천왜성, 안골왜성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흔적이 별로 없지만 명동왜성과 자마왜성이 있던 곳이고, 조선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제포왜관도 있던 곳입니다. 지금 그 자리에 진해신항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무역항과 읍성, 왜성들이 있으니 순천보다는 진해가 동북아의 평화공원이 들이설 최적의 입지라 할 수 있습니다. 왜 평화공원이어야 할까요? 침략의 역사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알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길을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실 진해의 왜성들은 그동안 외면당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반일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으로 왜성에 대한 가치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왜성이지만 이 왜성을 쌓는 데, 가장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람들은 바로 조선 민중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의 전리품이 아닌 조선 민중의 한이 서린 곳이기에 바로 우리의 문화재라는 것입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사실 저도 왜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낱 쓰러져 가는 큰 바위성정도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단체에서 왜성들을 견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왜성을 견학하면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사라져 더 이상 민중들의 피눈물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침략의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역사가 있음에도 그동안 진해주민들은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실 외부인들이 보는 진해의 이미지에는 해군도시도 있지만, 일제의 잔재도시라는 이미지도 남아 있습니다. 벚꽃, 구도심의 일제건물들 때문입니다. 점차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평화’라는 상징성을 띤 도시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평화라는 상징성을 가진 도시로서 관광상품화 할 때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 명나라, 왜국의 전쟁터였던 진해 동부권에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전쟁영웅의 흔적으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민중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전남 순천에는 성벽복원, 명나라, 조선, 왜국 장수들의 동상들도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많은 계층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이름없는 민중들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침략으로 인한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가르칠 수 있는 평화공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순천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고, 역사를 아래로부터 살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안골왜성인지, 잡초 풀밭의 안골초원인지이 곳이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많은지 의아했다. 온갖 잡초로된 풀밭이다보니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안골왜성이 아니라 안골초원이라 불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안골왜성은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안골로 들어가는 위해 푸르지오 아파트 앞에서 좌회전하여 터널을 통과하면 안골왜성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정표도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기에 지나치기가 아주 쉽다. 안골왜성에 들어가도 주차장 시설이 엉망이다. 그저 약간의 잔여부지에 그치지 않고, 땅도 푹푹 패여 있어서 주차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입구는 목재계단으로 설치했지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목재계단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목재계단을 따라 3-5분 정도 올라가면 안골왜성이 나온다. 안골왜성이 어떤 곳인가? 이 곳에는 원래 세조8년 (1462년) 김해 가망산에 있던 만호진이 주둔학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함락되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웅천왜성을 쌓았고,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등은 해발 100미터의 동망산 꼭대기 안골왜성을 쌓았다. 이들이 안골왜성을 쌓은 이유는 해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일본으로부터 보급문제가 발생하여 조선수군을 막기 위한ᅟ수군 기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지리적으로 보면 웅동만을 사이에 두고 웅천왜성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신항건설로 인해 없어졌지만, 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가덕수로를 지키는 데 최적지였다. 안골왜성은 일제강점기 때 고적 ‘웅천안골리성’으로 관리하였을 정도로 일본도 애착을 갖고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웅천왜성과 마찬가지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안골에는 조선 수군기지인 안골포진성이 있었다. 왜군은 이 성벽 돌을 안골왜성을 쌓는데, 사용하였고, 안골포진성 서쪽 성벽일부는 안골왜성의 성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안골왜성 성내의 전체면적은 약 5,000평(16,500㎡)로 상당히 넓다. 성의 둘레는 594m, 성벽의 높이는 4∼7m 정도이다. 안골왜성에 가면 알 수 있듯이 3등분 된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을 평평하게 깎은 뒤 혼마루를 이루고, 비탈을 깎아내면서 니노마루, 산노마루로 나누어서 따로 돌로 쌓았다. 이 성곽을 축조하는 데에는 약 5만명이 동원되었고,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어 바닷길을 운용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성의 출입은 육지 쪽을 막고 바닷길을 이용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이르도록 해자를 파서 교통로로 이용하였는데, 해안으로 드나들기 위한 통로가 만들어진 것도 왜성이 가지는 특징이다. 웅천왜성과 안골왜성을 가보면 바다의 경관이 장관인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신항만 건설로 인해 상당부분 미관을 해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좋은 경관을 갖고 있다. 만약 이 곳을 민간이 소유하고 있다면 이대로 방치할 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게 하곤 한다. 상당한 상품성이 있음에도 보존을 중시해서 방치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너무도 심하게 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가 너무 무성하다보니 지금 안골왜성에 와도 제대로 둘러보기도 어렵다. 어렵사리 풀을 깍인 곳인 곳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의 성들로 가 보긴 하였다. 잡초를 누군가가 깍아서 그래도 관에서 나름대로 인도를 만들었나 생각했는 데, 그 생각도 착각이었다. 잡초가 깍인 인도는 안골왜성 안의 무덤을 벌초하기 위해 온 사람이 통행로를 만들기 위해 깍은 것이다. 한마디로 관에서는 전혀 잡초를 건드린 적도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좋은 곳을 그냥 풀밭으로 방치해야 하는 지 곰곰이 생각해야 볼 것이다. 옛 것을 보존하고, 복원할 것은 복원하면서 역사와 자연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출할 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읍성의 해자조교 태풍으로 인해 무너지다.가끔 진해의 명칭을 웅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진해라는 명칭은 일본강점기에 생긴 명칭이고, 현재의 진해지역도 이 때 생긴 신도시이다. 그러기에 조선시대까지는 명실상부하게 웅천이 진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웅천읍성’이라는 명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읍성은 지방군현에 읍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이다.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21년 (1439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일본과의 무역을 하던 곳이기에 일본인의 불법거주가 많아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 이 당시 제포왜관이 있었는 데, 이렇듯 왜구와 왜인이 진해에 연관성이 많은 이유는 부산-진해-마산-거제 일대와 일본 규슈 북부지역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이었디.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도 쓰시마·이키 등 사이에 있는 섬을 징검다리 삼아 보름이면 건너갈 수 있었다. 진해는 한·일 교류의 요충지 구실을 했지만, 동시에 왜구의 노략질에 숱한 피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진해는 일찌감치 한·일 교역의 중심지이자 군항으로 발달했다.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하지만 중종5년(1510) 삼포왜란 때에는 왜인에 의해 일시함락되어, 동문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리고 임진왜한 때에는 왜군에게 함락되 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성과 마찬가지로 웅천읍성에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 도랑, 폭 4미터의 ‘해자“가 있다. 이 ’해자‘에는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닥에 박아놓은 나무말뚝(목익)과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나무다리(도개교)도 잇었다는 사실이 2001년부터 2008년 사이의 네차례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해자를 건너기 위해 만든 해자조교가 지난 7일의 태풍으로 무너졌다. 하루 속히 복구해야 할 것이다. (아래사진) 보통 성에는 치와 문루, 옹성시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웅천읍성도 이와 같은 형태이다. 옹성은 성문앞의 성벽이 항아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웅천읍성 뿐 아니라 왜성도 다소 비슷한 형태이다. 이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옹성형태로 만들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성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적을 공격하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입구는 좁고 성문 앞에는 조금 둥글고 넓게 만들어 적이 갇히는 형태이다. 웅천읍성에는 명문석이 있다. 바로 공사 책임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동벽과 남벽에 모두 5개의 명문석이 확인되었는데, 진주, 창녕, 청도, 합천의 5개소이며 경상도 전역의 백성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 맨 아래 바위에 한자로 적힌 것을 알 수 있다) 웅천읍성은 동서남북의 4개의 대문이 있었다. 현재 복원된 것은 동문인 견룡문과 주변성벽이며 경남도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왜성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수란’- 웅천 왜성 표지석 -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 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진해 웅천왜성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수란’이라는 조선인 소녀가 있었다. 일본 이름으로 ‘오타줄리아’이며 포로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 데, 그 중의 한명이다. 그녀는 ‘고니시’가 처형당한 후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녀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인 것이 발각되어 배교할 것을 강요당했지만 거부하여 40년 유배생활 끝에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일본에서는 그녀를 다룬 소설이 상당수 발간되었으며 그녀가 유배생활을 했던 ‘고즈시마’에선 1970년부터 5월에 그녀를 기리는 ‘줄리아 축제’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모리 레이코’의 소설 <삼채의 여자>에서 조선인 소녀‘수란’은 이렇게 말한다. “ 이 나라에 내가 내 발로 왔다면야 고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무도한 싸움 때문에 붙잡혀 끌려온 희생자예요. 아무리 애정을 베풀어준다 하더라도 잡혀 온 사람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오지 않는 한, 이 나라는 원수의 나라일뿐이지요. 이 나라를 어떻게 고향이라 생각할 수 있겠어요.” 웅천왜성은 왜성가운데 울산 ‘서생포 왜성’ 다음으로 큰 왜성이다. 해발 184m의 남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성벽 둘레 1250m에 면적 1만7930㎡이다. 웅천왜성은 안골포, 마산, 가덕도, 거제도 등과 육로와 해로 모두 연락하기 좋은 위치에 있으며, 일본으로 철수하기에도 좋은 위치이다. 왜군은 이곳을 부산 다음의 제2거점으로 삼았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이 웅천왜성에 세스페데스 신부가 1년가량 거주하였고, 이 때 왜군뿐만 아니라 조선인 포로에게도 천주교리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웅천왜성에 대해서는 세스페데스가 일본인 포르투갈 신부인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웅천성은 난공불락으로 조만간 거대한 성벽과 망루와 치성을 가진 대단한 공사가 마무리될 것입니다. 이 근처에는 아우구스티뉴(고니시 유키나가의 세례명) 휘하의 모든 중신과 병사, 동맹자, 종속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매우 잘 지은 넓은 저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저택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도 잠시일 뿐 왜군은 웅천왜성에서 상당히 힘든 생활을 보냈다. 조선 수군에게 제해권을 빼앗겨 보급이 끊기다시피하여 사실상 성에 틀여박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세스페데스가 보낸 두 번째 편지에도 굶주림, 추위, 질병 등을 호소하고 있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남산을 택한 것은 지형상으로 해변에 돌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웅포만을 안고 있어 선박 수백 척이 정박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 때문이었다. 아울러 육로로도 상호 연락이 용이하고 해로도 마산, 거제, 가덕도, 안골포와 상호 연락이 용이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웅천왜성에서 바라본 바다 (신항만 매림 등으로 바다가 일부 없어짐) - 일본군이 철수할 때 성에 불을 질러 내부 건물은 없어졌으나,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벽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왜성의 축성법과 규모를 엿볼 수 있다. 성곽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성벽은 대형의 면석(面石)을 상하로 고르게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채웠으며 자연석 또는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잔돌끼워 난적쌓기를 하였다. 임진왜란의 다급한 상황에서도 왜군들은 조선군에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현무암과 청석을 인근에서 구매했다. 놀라은 것은 이 큰 바위들을 산 위에까지 운반하여 성을 축조한 것이다. 가장 큰 바위는 1.5미터 * 1.5미터*2미터라고 하니 이 큰 바위를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선 민초의 고충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이렇게 많은 사연과 조선 민중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중요한 곳이지만, 웅천왜성을 가보면 온갖 잡초가 무성하고, 돌들도 소실된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웅천왜성을 단순히 왜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성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보다 관리에서부터 이 왜성을 어떻게 변모시켜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게 할지, 그리고 아픈 역사를 체허하는 산교육의 관광지로 탈바꿈시킬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 일부 무너진 성곽) 자료참조 : 한겨레신문, 향토문화대사전 등▶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