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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무용단, 진해드림파크 절정의 단풍에 전통춤을 담았다.올해 첫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11일, 창원특례시와 예향무용단은 진해구의 산림휴양시설로 시민들의 보물같은 진해드림파크의 목재문화체험관 야외무대에서 전통춤 공연 및 영상제작회를 개최하였다. [사진: 국수호류 입춤을 공연하는 예향무용단] 예향무용단(대표 조혜옥)은 창원특례시의 지원으로 지역의 역사유적지와 천혜의 풍광이 수려한 장소,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기념해야 할 명소를 찾아, 매년 시민들과 소통하는 전통춤 공연을 하면서 전통예술의 새로운 컨텐츠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웅천읍성 저잣거리 공연과 영상제작을 시작으로 이이효재길 추념광장에서의 헌정공연, 만추의 경화역공연, 남도 제일의 단풍절경인 내수면생태공원의 노상공연에 이어 목재문화체험관의 야외무대에는 첫 한파가 발효되었음에도 수많은 가족단위 관객들과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형형색색 물들어 가는 단풍의 정취와 어우러지는 한폭의 산수화도 같은 전통춤으로 춤추며 소통하였다. [사진: 호남소고춤을 공연하는 예향무용단] 오늘 공연에서는 예향무용단의 10여명의 춤꾼들이 호남소고춤, 부채입춤, 진도북춤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60분가량 늦가을 추위도 잊을 만큼 열기가 가득한 무대였다. 예향무용단은 공연영상의 편집이 마무리되면 유튜브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창원시민과 국내외에 널리 홍보할 계획이다. 유튜브에서 ′예향′ 또는 ′예향무용단′을 검색하면 다양한 영상물을 감상할수 있다. 예향무용단은 오늘 공연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창원특례시의 문화예술과와 푸른도시사업소에 감사를 전했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예향무용단, ′진해의 만추′를 전통춤의 화첩에 담다.(사진설명: 예향무용단 조혜옥대표가 경화역공원에서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24일 창원특례시와 예향무용단은 진해구의 경화역공원, 내수면생태공원과 태백동에 소재한 고풍스런 한옥등을 순회하며 전통춤의 실연과 영상촬영회를 개최하였다. 예향무용단(대표,조혜옥)은 창원특례시의 지원을 받아 진해구의 역사유적지 또는 풍광이 수려한 곳, 기념해야 할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전통춤 공연을 하면서 전통예술의 새로운 컨텐츠를 발굴하고 세종의 왕명에 의해 축성된 웅천읍성을 홍보하는 저잣거리공연과 이이효재선생의 삶을 반추하는 헌정공연 등을 하고 있다. 즉, 진해구의 역사와 명승지를 홍보하는 공연을 매년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이번에는 벚꽃축제의 대표사진으로 등장하는 화려한 연분홍 벚꽃이 가득했던 경화역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경화역의 고즈녁한 만추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국수호류 입춤을 비롯한 봄꽃같은 전통춤을 가을색으로 그렸으며, 내수면 생태공원의 불타는듯한 100년 단풍과 춤사위가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예향무용단은 공연의 영상이 편집되면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창원시 진해구의 가을풍경이 한껏 자태를 드러내 국내외에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진해구민들이 이번 동영상을 많이 시청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번 영상은 길지않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아 전통춤의 화첩에 진해이야기를 담았는데,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않은 창원시와 진해구청, 그리고 고품격의 영상제작을 담당한 포토그래퍼 이성민작가의 노고가 크게 기여하였다. 예향무용단은 이번 기획을 통하여 그동안 생소하였던 늦가을의 진해모습과 전통이 함께 어울러지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홍보되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예향무용단 ′이이효재선생′ 헌정 전통춤 공연창원시와 예향무용단은 11월 14일 오늘 저녁에 진해구 제황산공원에 조성된 이이효재길 기념조형물앞에서 탄생 98주년을 맞는 한국여성운동의 선구자인 이이효재 선생을 기리는 헌정 전통춤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헌정공연은 통일을 염원했던 여성사회학자이며 여성·평화·통일운동가인 이이효재 정신을 선양하는 일에 동참한 예향무용단(대표 조혜옥)의 제안과 ‘이이효재 선생과 함께하는 여성친화도시, 창원’을 주제로 내걸었던 창원시와 허성무 창원시장 또한 “이이효재 추모사업을 다각도로 진행해, 창원이 낳은 여성·평화·통일운동가 이이효재 선생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서 공연이 개최하게 되었다.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지난 9월에는 창원시 진해구 제황산공원 둘레길 2,226m에 생명숲길· 평등길· 평화길· 이음길 등 4개의 주제로 조성한 ‘이이효재길’을 개장했다. 이이효재 선생이 말년에 산책과 사색을 즐겼던 이곳에서 선생의 실제탄생일에 개최되어 더욱 뜻깊은 공연이 될 것이다. 공연에서는 이이효재 선생의 희노애락이 깃든 삶의 여정을 오롯이 전통춤인 축원무, 검무, 입춤소고, 진도북춤으로 표현하고 특히 선생님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애환을 조혜옥대표가 교방살풀이춤으로 풀어낸다. 예향은 우리고장의 역사유적지, 명승지에서 전통춤 공연을 하여 영상으로 지역홍보를 담당하여 전년에는 진해구 성내동 웅천읍성에서 공연하고 영상으로 홍보활동을 하고있다. 예향무용단은 ′우리전통춤으로 지구촌과의 소통′이라는 목적으로 2011년에 설립하여 독일교민 전통춤연수, 영국 6·25참전용사 위문공연 등과 국내의 다양한 무대에서 우리몸짓과 우리가락의 멋스러움을 알리고 있는 경상남도 지정의 전문예술단체이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군항, 벚꽃이란 도시 이미지에는 웅천, 웅동이 없다.( 진해구청 홈피에 나타난 진해의 야경사진) 1, 웅천, 웅동이 진해에서 차지하는 위치 2009년 이명박 정부시절 마창진 행정구역통합이 강행될 시기 웅천,웅동에서는 부산과의 통합을 지역주민단체에서 외치고 있었다. 사실상 부산의 생활권인데, 굳이 마창진 통합권역에 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웅천에서 강서까지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관할하기 때문에 통합창원시에 속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행정구역통합은 국회의원 선거구내에서 가능한 것이고, 지방자치제하에서 경남도가 이 지역을 부산에 넘길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주장을 이들 지역주민들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지나칠 사항도 아니다. 그동안 웅천, 웅동지역은 진해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진해의 변방이다보니 여러 가지 소외된 측면이 있었고, 거리상으로도 부산에 인접해 있다보니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역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창원시로 행정구역통합이 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이러한 문제는 오히려 더 가속되고 있다. 소도시의 변방에서 대도시의 변방으로 변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이제 더 이상 창원시의 아니 진해지역의 변방에 머무를 수 없는 곳이다. 부산신항에 이제 진해신항까지 완공되고, 인프라만 확충된다면 창원시에서 가장 미래가 밝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부산신항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꾸준한 인구상승이 지속되었고, 지난 4월 웅동2동은 인구 4만명을 넘었으며, 웅천지역도 1만 3천명에 다가서고 있다. 인구또한 웅천,웅동지역은 거의 6만명에 이르고 있다보니 전체 진해인구의 30%정도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전체 진해구 인구증가의 구심점이 될 지역이다. 현재 진해인구는 그동안 창원의 직장인이 비교적 저렴한 주택을 구입하여 진해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한계점에 이르다보니 지난해부터 인구증가가 멈춘 상태이다. 하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진해지역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더디기는 하지만 기업이 유치되고, 신항이 정착된다면 더욱 인구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진해지역은 일시적으로 진해를 거치는 계층이 주거하는 시스템이지만, 웅천,웅동지역은 장기거주하는 주민들로 채워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2, 군항, 벚꽃이란 도시 이미지에는 웅천, 웅동이 없다. 진해라는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해군, 군항, 벚꽃을 말하곤 한다. 진해에 신항이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부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신항이란 명칭 때문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부산을 항만도시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웅천, 웅동은 진해구에 속해 있지만 진해이미지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동력이라고 불리는 웅천,웅동 지역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성장동력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신항에 일이 있어서 왔는데, 알려진 것이 없어서 웅천이나 웅동에서 소비를 하지 않고, 인근 부산이나 진해지역에 가서 소비를 한다면 단치 거쳐가는 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상징하는 대외적인 문화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웅천, 웅동지역은 지금은 진해의 변방이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중심지역이었다. 웅천읍성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으며, 3.1운동도 웅동에서 전개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시기에도 웅천왜성, 안골왜성을 만들었다는 점, 제포왜관에서 왜인들이 무역을 한 점 등을 비추어보아도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신항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과거와 미래에서 모두 가치가 인정되는 지역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임진왜란 시기에 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받은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침략전쟁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왜국으로부터 수탈을 당한 흔적인 왜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 왜성을 일본이 축조한 것이라 하여 외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와 눈물이 만든 우리 역사의 흔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 민중이 없었다면 왜성 축조는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거의 흔적을 바탕으로 미래에는 신항에서 북한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 통일된 한국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 웅천왜성이 위치한 남산에 평화공원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진해의 구도심의 이미지와는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서도 평화공원이 필요하며, 신항의 미래를 보아도 가장 알맞은 이미지인 것이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웅동을 동북아평화공원으로 조성해야(사진: 순천시청) 지난해 전남 순천의 김영득 민주당 예비후보는 동북아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김영득 에비후보가 경선에서 탈락은 했지만, 이 공약은 지금 순천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순천에서는 도의원들도 합세하여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들로 말미암아 2025년까지 전남 순천시에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순천에는 순천왜성과 검단산성이 있습니다. 순천왜성은 고니시유키나가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쌓은 왜성입니다. 이에 반해 검단산성은 조명연합군이 왜군을 격퇴한 산성이라고 합니다. 순천시에서는 이 두가지의 스토리를 갖고 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어떨까요? 순천보다 오히려 진해가 평화공원을 만드는 데에는 최적지임에도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논의나 토론이 전무했습니다. 진해에는 웅천읍성과 웅천왜성, 안골왜성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흔적이 별로 없지만 명동왜성과 자마왜성이 있던 곳이고, 조선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제포왜관도 있던 곳입니다. 지금 그 자리에 진해신항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무역항과 읍성, 왜성들이 있으니 순천보다는 진해가 동북아의 평화공원이 들이설 최적의 입지라 할 수 있습니다. 왜 평화공원이어야 할까요? 침략의 역사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알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길을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실 진해의 왜성들은 그동안 외면당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반일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으로 왜성에 대한 가치를 외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왜성이지만 이 왜성을 쌓는 데, 가장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람들은 바로 조선 민중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의 전리품이 아닌 조선 민중의 한이 서린 곳이기에 바로 우리의 문화재라는 것입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사실 저도 왜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낱 쓰러져 가는 큰 바위성정도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단체에서 왜성들을 견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왜성을 견학하면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사라져 더 이상 민중들의 피눈물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침략의 역사를 다시 돌이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역사가 있음에도 그동안 진해주민들은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실 외부인들이 보는 진해의 이미지에는 해군도시도 있지만, 일제의 잔재도시라는 이미지도 남아 있습니다. 벚꽃, 구도심의 일제건물들 때문입니다. 점차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평화’라는 상징성을 띤 도시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평화라는 상징성을 가진 도시로서 관광상품화 할 때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 명나라, 왜국의 전쟁터였던 진해 동부권에 평화공원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야 할 것은 전쟁영웅의 흔적으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민중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전남 순천에는 성벽복원, 명나라, 조선, 왜국 장수들의 동상들도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해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바로 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많은 계층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이름없는 민중들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침략으로 인한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가르칠 수 있는 평화공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순천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고, 역사를 아래로부터 살필 수 있는 진정한 평화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도요지전시관,“다시 보는 웅천읍성”개최▶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창원시 웅천도요지전시관에서는 10월 20일부터 12월 20일까지 <다시 보는 웅천읍성> 전이 개최 되었다. 이번 전시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웅천읍성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위치한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16년(1434년)에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제포왜관의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연해읍성이다. 읍성은 지방의 주요 거점에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기능이 복합되어 축조된 성곽으로 웅천읍성은 읍성의 축조 목적인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 기능을 가장 적절하게 수행한 성곽에 해당된다. 특히 웅천읍성은 조선 전기에 개항한 삼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제포왜관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출토유물은 분청사기편, 백자편, 옹기편과 와편, 동물뼈, 목제, 석탄 등이 출토되었다. 분청사기는 주로 대접, 접시, 병의 저부편 삼족기 다리편들이고 백자는 대접, 종지, 접시의 주부편들이다. 옹기는 대부분 동이와 병의 구연부편이고 기와는 선조문과, 집선문, 창해파문 등이 시문된 편들이다. 웅천읍성은 1434년 세종 16년에 축조된 이래 문종과 단종에 이르기 까지 수차례의 개축이 이루어지고 근래에는 개발로 인하여 유적 및 유물이 훼손되어 아쉬움을 준다. 전시 관람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인원을 제한하여 소수로 진행하며, 전시관내·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및 손 소독제 사용, 거리두기 준수, 시설 및 기구 소독 등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황규종 문화체육관광 국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웅천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번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라고 말했다▶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웅천읍성의 해자조교 태풍으로 인해 무너지다.가끔 진해의 명칭을 웅천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진해라는 명칭은 일본강점기에 생긴 명칭이고, 현재의 진해지역도 이 때 생긴 신도시이다. 그러기에 조선시대까지는 명실상부하게 웅천이 진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웅천읍성’이라는 명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읍성은 지방군현에 읍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성곽이다.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21년 (1439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일본과의 무역을 하던 곳이기에 일본인의 불법거주가 많아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 이 당시 제포왜관이 있었는 데, 이렇듯 왜구와 왜인이 진해에 연관성이 많은 이유는 부산-진해-마산-거제 일대와 일본 규슈 북부지역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이었디.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도 쓰시마·이키 등 사이에 있는 섬을 징검다리 삼아 보름이면 건너갈 수 있었다. 진해는 한·일 교류의 요충지 구실을 했지만, 동시에 왜구의 노략질에 숱한 피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진해는 일찌감치 한·일 교역의 중심지이자 군항으로 발달했다. ▶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하지만 중종5년(1510) 삼포왜란 때에는 왜인에 의해 일시함락되어, 동문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리고 임진왜한 때에는 왜군에게 함락되 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성과 마찬가지로 웅천읍성에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 도랑, 폭 4미터의 ‘해자“가 있다. 이 ’해자‘에는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닥에 박아놓은 나무말뚝(목익)과 들었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나무다리(도개교)도 잇었다는 사실이 2001년부터 2008년 사이의 네차례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해자를 건너기 위해 만든 해자조교가 지난 7일의 태풍으로 무너졌다. 하루 속히 복구해야 할 것이다. (아래사진) 보통 성에는 치와 문루, 옹성시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웅천읍성도 이와 같은 형태이다. 옹성은 성문앞의 성벽이 항아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웅천읍성 뿐 아니라 왜성도 다소 비슷한 형태이다. 이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옹성형태로 만들면 적이 아무리 많아도 성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적을 공격하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입구는 좁고 성문 앞에는 조금 둥글고 넓게 만들어 적이 갇히는 형태이다. 웅천읍성에는 명문석이 있다. 바로 공사 책임자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동벽과 남벽에 모두 5개의 명문석이 확인되었는데, 진주, 창녕, 청도, 합천의 5개소이며 경상도 전역의 백성이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 맨 아래 바위에 한자로 적힌 것을 알 수 있다) 웅천읍성은 동서남북의 4개의 대문이 있었다. 현재 복원된 것은 동문인 견룡문과 주변성벽이며 경남도 기념물 제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
아픈역사의 지명 진해진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명은 지금의 진해현이 있었는데, 그곳은 현재 마산합표구의 진동, 진전, 진북에 해당되며, 이 곳을 삼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이곳의 지명이 갑자기 1912년에 웅천군의 관할지역이 웅서면과 웅중면(웅천 서쪽) 일부를 개편하여 진해면이라고 개편하엿는지는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할 것입니다. 러일전쟁 승리후 일본의 해군의 기개는 하늘을 뚫을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해군기지에 바다를 제압하다는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뜻에 부합한 지명이 바로 진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광복 후 일본이 지은 진해라는 지명을 개명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복후 미군정은 친일파를 등용하고, 정부수립후에도 친일파들이 나라를 다스렸으니, 진해라는 지명을 개명해야 된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 것입니다. 이제 진해라는 명칭의 사용은 10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와서 명칭을 변경하는 것도 무리라고 보고, 이제는 그 명칭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입니다. 왜 일본은 해군기지를 진해로 선택했을까요. 군항의 조건으로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적으며, 날씨가 좋고, 수목도 많으며, 만으로 구성되어 은폐가 용이해야 합니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 지금의 신마산(월영동) 지역을 조계지(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상업을 할 수 있고, 치외법권이 인정되던 곳)로 삼고, 이 곳을 군항으로 삼을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월영동 지역은 수심이 낮아 군함의 정박에 애로점이 많았기에, 보다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환경을 갖춘 군항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조건에 부합한 군항의 최적지가 바로 진해였습니다. 또한 일본의 해군도시인 구레도시와 유사한 환경을 갖추었고, 육로로는 장복산으로 침입이 어려웠기에 방어가 유용한 지역입니다. 이제 원래의 진해명칭인 웅천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진해가 웅천현이었다는 것은 대부분 아실 것입니다. 1906년에 웅천군으로 개칭되었고, 현 웅천지역은 웅읍면, 웅천의 동쪽은 웅동면, 웅천의 서쪽은 웅중면, 웅서면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리고 1912년에는 웅서면과 웅중면 일부가 개편되어 진해면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웅천이 조선시대 때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지는 유적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지원금 확인하기 임진왜란 때 거의 7년 가까이 웅천왜성에는 왜군이 주둔하고, 웅천읍성에는 조선이 주둔하였던 곳입니다. 지금 웅천을 가 보면 웅천읍성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웅천읍성) 하지만 웅천왜성을 가보니 온갖 잡초가 난무하고 왜성의 돌들이 유실되고 있었습니다. 아픈 과거도 역사인데, 왜성관리는 너무나 소홀한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시에도 웅천왜성을 쌓고, 왜군이 주둔한 것을 보면, 웅천이라는 곳이 왜군의 대륙진출의 기지로 최적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웅천왜성) (웅천왜성에서 본 진해 앞바다) 이토록 웅천, 진해라는 곳은 일본의 대륙진출의 최적지였으니,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조선인의 피해, 그리고 왜성축조나 일제시대에 강제노역으로 국민들이 끌려나가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곳입니다. (웅천왜성의 유실된 흔적) 지금의 진해 구 시가지, 여좌동 일대의 로망스 천, 진해역, 경화역, 철로 건설, 터널공사등으로 인해 많은 선조들이 강제부역을 했던 곳이며, 진해에 일본의 해군기지가 들어섬으로 많은 진해의 원주민들이 땅을 강제로 빼앗긴 곳입니다. 이렇듯 진해라는 이름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아픔과 고통이 묻어있는 곳입니다. 이런 아픈 역사의 진해를 단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역사를 묻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당한 고통의 역사를 보존하고, 복원하여,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고, 평화만 가득한 곳을 만들기 위한 산교육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 진정한 선조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 정부 환급금 조회하기
